최선의 삶

임솔아 소설 ‘최선의 삶’을 읽고

by 붉은낙타



소설은 열일곱 아이들의 성장소설이다. 나(강이), 소영이, 아람이. 소설 속 강이가 사는 동네는 읍내동이다. 강이의 부모는 대전 내에 명문고 입학율이 높은 학교를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을 했다. 전민동 늘푸른아파트. 늘푸른아파트는 전민동에서도 가장 최근에 지어진 최고층 아파트로 등본상으로 강이가 사는 아파트이다. 전민동이 개발된 것은 십 년이 채 되지 않았다. 연구단지가 생기면서 연구원 가족들이 모여 살 곳이 필요해 생긴 동네이다. 강이는 위장전입을 하고 학교를 다니며 ‘병신’이 되어갔다. 소설 속에서는 열일곱 아이가 자신이 배제되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폭력을 당하는지 폭력에 익숙해지는지 그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그것을 깨닫는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그저 익숙한 학교의 풍경, 집의 풍경, 세상의 풍경이다. 그야말로 우리의 피부에 스민 세상을 그린다. 그 사실이 참 무서웠다.

엄마는 크기가 다른 냄비를 써도 라면 물의 양을 정확히 예측했다. 반장은 중간고사에 어떤 문제가 나올지 정확히 예측했다. 선생은 무슨 말을 해야 아이들이 웃을지 예측했고, 아이들은 어떤 말을 해야 선생이 화를 낼지 예측했다. 그렇지만 나는 예측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읍내동에서 쌓아왔던 예측의 기술은 전민중학교에서 번번이 빗나갔다. 읍내동 중학교의 영어시간에는 유창한 발음으로 영어 교과서를 읽는 아이가 놀림의 대상이 되었지만, 전민중학교의 영어시간에는 모두가 원어민이 되었다. 내가 읍내동에서 선행학습반에 뽑혀 한 학년 위의 수학 문제를 풀고 있을 때, 전민동 아이들은 미분이니 적분이니 하는 두세 학년 위의 수학 문제를 풀었다. 이해받을 거라는 예측으로 던진 말에 선생들은 화를 냈고, 화낼 거라는 예측으로 던진 말에 친구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읍내동에서 그나마 똑똑한 아이로 취급받던 나는 전민동에 오자 멍청한 아이가 되었다.- 소설<최선의 삶> p21

강이가 전민동에서 학교에서 어떤 아이가 되어가는지 묘사된다. 누군가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나쁜 짓을 하지 않았지만 전민동에서 학교에서 강이는 ‘병신’이 되어간다. 삶의 ‘예측기술’이 빗나간다는 것이 무엇일까. 남과 다른 사람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열일곱 살은 이럴 때 어떤 삶을 선택할까. 강이는 학교 생활의 유일한 끈이었던 아람과 함께 소영을 선택한다. 소영과 아람과 강이는 집을 나간다. 나갔다 들어왔다가 반복된다.

소영의 예측 방식은 달랐다. 내 방식이 먼 곳에 놓인 돌멩이를 보려는 거라면, 다른 사람들의 방식이 있는 돌멩이를 꾸준히 쥐고 있는 거라면, 소영은 돌멩이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바둑을 두는 방식이었다. 현실에 두는 돌 하나로 미래의 돌의 위치를 바꿔놓았다. 소영의 곁에서 나는 까마득하게 느껴졌던 미래가 현실을 향해 마구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했다. 막연한 단어로만 꺼내보았던 미래가 현실 속에서 펼쳐지는 것을 목격했다. 소영은 현실이라는 그물로 미래를 포획하는 유일한 아이였다. 제 마음대로 꽃을 피우고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아이였다.- 같은책 p22

‘돌멩이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바둑을 두는’ 사람, ‘현실의 두는 돌 하나로 미래의 돌의 위치를 바꿔놓는’ 사람, ‘현실이라는 그물로 미래를 포획하는 유일한 아이’, ‘제 마음대로 꽃을 피우고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아이’ 소영을 강이는 선택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소영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열일곱 소영이 가지는 힘은 무엇일까 나는 잘 알지 못했다. 그 힘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힘이라 눈치채기 힘들다. 사회 속에서 그 힘은 힘이라기보다는 열일곱에게 필요한 것이다. 공부 잘하기, 학원 잘 다니기, 어른 눈에 벗어나지 않게 눈치껏 행동하기 이런 세상살이의 규칙을 잘 아는 아이다. 어떻게 해야 눈 밖에 나지 않는지 아는 아이다. 새로운 세상 전민동에서 그것을 예측하지 못했던 강이는 아람과 함께 소영이의 손을 잡는다. 그렇게 열일곱의 삶은 시작된다.

아람은 집이 싫어서, 나는 밖이 좋아서 우리는 함께 집을 나갔다. 집에서 받은 상처를 길에 조금씩 버리듯 아람은 매일매일 자신의 상처를 내게 말해주었다. 하지만 아람은 집보다도 길에서 더 큰 상처를 받았다. 집에서 받은 상처 따위는 어린 아이의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받는 상처를 시시하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집이 아니라 길을 선택한 걸 다행으로 여겼다. 집도 시시하게 여길 수 있었다.- 같은책 p15

“머리카락 때문에 살았어”
죽여버리겠다며 아버지가 부엌을 향해 걸어갔다고 했다. 아버지는 싱크대를 뒤져 부엌 가위를 꺼냈다고 했다. 가위를 들고 아람을 향해 달려들었다고 했다. 이제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아람은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고 했다. 아람의 아버지 표정을 상상하다가, 우리 아빠가 꽃다발을 건넬 때의 표정이 떠올랐다. 가위를 쥐는 마음과 꽃다발을 건네는 마음이 같은 표정이일 것 같았다. 아람의 아버지가 가위로 아람의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했을 때 아람은 오히려 안도가 됐다고 했다. 정말 기뻐서 아람은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고 했다. 아빠는 쥐어뜯듯 머리를 자르면서도 귀 같은 부분은 피해 가며 가위질을 했다고 했다. 무서웠던 아빠가 그 순간 우스워졌다고 했다. 아람의 귓불 밑에는 보랏빛 멍이 잔뜩 들어 있었다. 한쪽 눈 흰자위의 핏줄이 터져 붉은자위가 되어 있었다. 다리는 조금 절룩였다. 앞니 하나는 푸른색이었다.- 같은책 p82

소설의 제목처럼 아람도 강이도 ‘최선의 삶’을 선택하고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살았던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스물의 삶은 어떻게 흘렀을까. 최선의 삶이라는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고 그렇게 끄덕여지는 현실이 무섭다. 어른의 도움과 지지와 배움 속에서 자라야 할 청소년기라는 말이 무색하다. 강이와 아람과 소영이의 옆에 어른들은 누구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벌새>도 생각나고 내 옆의 누군가도 생각나고 나도 돌아보게 된다. 작가는 10대 시절부터 이야기들을 무의식적으로 적기 시작했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끊임없이 같은 꿈으로 찾아왔던 악몽을 정리하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에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놓지 않았던 악몽은 무엇이었을까. 악몽은 작가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작가는 왜 악몽을 놓지 못했을까. 대학문학상인 이 소설은 생각지도 않은 수상이라는 결말로 이 악몽과 인사하게 되었다고 ‘행복하다’는 작가의 소감이 덧붙여져 있다. 다행스럽다. 작가 스스로의 힘이다. 스스로 악몽과 이별하였다. 작가야말로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