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라는 범주의 질문
작년 대학교 때 알고 지내던 선배 아이의 죽음을 읽게 되었다. 페북을 통해 갑자기 전해받은 소식이었다. 가슴이 쿵하고 떨어졌다. 선배는 아이의 죽음으로의 선택을 담담히 혹은 처절히 써 내려가고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사고하고 해야 할지 나는 알지 못했다. 책에서 읽고, 배우고, 간접경험을 하기 위해 애써 고심했던 순간들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바로 옆의 사람을 모르고 있었다. 무엇을 알고 누구를 알았을까 질문들이 머리 속에서 쏟아졌다. 자려고 누운 밤에 갑자기 접한 소식은 그렇게 한마디 손가락 글도 남기지 못하고 지나갔다.
이틀 전 늦은 퇴근이었다. 딸이 뜬금없이 ‘너무 슬퍼’라고 한다.
왜, 무슨 일이야
숙명여대 트랜스젠더라는 분 입학 포기 글 읽었어?
아니.
읽어봐. 아... 기분이 엉망이야.
그러고도 그날 밤은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늦게 일어나 페북을 보다 자연스럽게 A의 입학 포기의 글을 읽었다. 딸은 올해 대학입시를 준비(딸은 2년 늦게 수능 준비를 시작했고, 모든 공부를 처음 혼자서 시작했었다)하면서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었다. 뭔가 이렇게 목표를 두고 (재미있지 않은, 힘든)시험 공부를 하며 내 인생의 일 년을 쓰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그런 같은 입장의 A가 다시 수험서를 고르고 있다는 대목에서 나 또한 가슴이 너무 아팠다. 딸이 같은 상황에서 다시 시험을 준비해야 했다면 어땠을까. A의 삶에서 그 일 년은 무엇일까. 일 년뿐일까. A가 거쳐왔던 삶의 시간 속에 어떤 관계와 어떤 삶이 있었을까. 우리는 모른다. 오늘 양경언님의 <안녕을 묻는 방식>이라는 책을 읽으며 주디스 버틀러의 글에 눈을 뗼 수가 없었다.
지금 여기서 작동하고 있는 인간 개념의 문화적 외형은 어떤 것일까?....이것은 레즈비언, 게인, 바이섹슈얼 연구들이 성적 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관련해 제기한 질문이면서,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이 추행하는 때로는 살인의 표적이 되었을 때 제기한 질문이고, 인간 유형론에 관한 규범적 관념이라는 명목으로 너무나 자주 몸에 대한 원치 않는 폭력으로 성장기가 얼룩졌던 인터섹스들이 제기한 질문이기도 하다. 의심할 바 없이 이는 또한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초점을 둔 운동들이 보이는 깊은 유사성의 근거이기도 하다.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제거하려는 규범적 인간 형태론과 인간의 능력에 대항하려 애쓰면서 말이다. 문화적으로 가능한 인간 개념을 지탱하는 인종적 차이를 고려해볼 때, 이는 또한 인종차별 반대 투쟁과 유사한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인종차별 반대 투쟁은 이 시간에도 전 지구적 영역에서 극적이고도 공포스럽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담론의 층위에서 보면, 어떤 삶은 전혀 삶으로 간주되지 않고 인간적인 것도 될 수 없다. 그런 삶은 인간을 나타내는 지배적 틀에 맞지 않음으로써, 처음에는 담론 층위에서 그런 삶을 인간 밖의 것으로 탈-인간화하는 일이 일어난다. 그다음에 이것은 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지는데, 이 폭력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문화 속에 탈인간화가 작동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양경언, 안녕을 묻는 방식> P75
어느 누구의 삶을 삶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그것은 우리 문화 속에 ‘탈인간화’가 작동하고 있다는 메시지는 전달하고 있다고 한다. 양경언님은 같은 책에서 우리의 ‘인간 개념 자체가 이미 ’탈인간화하는 일의 포함으로 지탱되어왔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A씨의 일상과 삶을 거부하는 것은 그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 사회 속에서 사람으로 생존하기 위해 자리를 인정받은 사람도 하루하루가 녹록하지 않다. 그러나, 그 작은 자리마저 설 곳을 잃는다면 그래서 어디에 나의 자리가 있을지 헤매고 헤매고 도망다녀야(A는 이번 선택에서 ‘두려움’이 컸다고 했다)한다면 우리 사회는 ‘탈인간화’가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이라 대목에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울러 아래 글은 앞으로 우리가 답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이 질문에 나는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특정한 젠더여도 여전히 나는 인간의 일부로 여겨질 수 있을까? 내가 그 범위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인간’ 개념이 확장될까? 특정한 방식의 욕망을 표현해도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삶을 영위할 자리가 있을까, 그리고 그 자리는 내가 사회적 존재가 되기 위해 의존하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 주디스버틀러 <젠더 허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