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글에선가 통계적으로 성소수자의 비율이 엄연히 있는데, 당신의 주변에 성소수자가 없다는 것은 당신과 당신이 속한 공동체가 그들에게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일면 동의를 하면서도 내 주변에는 그래도. 없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책을 읽은 지금 생각이 달라졌다. 나와 내가 속은 공동체는 그들에게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는 것. 그것 하나는 확실하겠다.
나는 남성답다는 것, 여성답다는 것의 사회적 인식의 토대에 서 있다. 그리고, 사회 속에서 내가 배우고 듣고 본 것을 반영한다. 나의 인식은 그 안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을 것이다. 그 속에서 나는 나에게도 여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외모와 목소리와 행동을 요구할 것이다. 요구할 뿐 아니라 욕망할 것이며, 욕망하고 있다.
나는 어떤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어떤 성을 사랑할까. 고민해보지 않았다. 여자로 태어났고, 세상엔 남자와 여자밖에 없는 줄 알았고, 여성인 나는 어느덧 주변부의 역할이 익숙했고, 몸에 익었다. 주변부가 아닌 중심부로 내몰릴수록(역할을 부여받을수록) 힘들었다.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주변부가 더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감정노동을 잘하려고 애썼고 내가 할 본분이라고 생각했고 더 잘하려고 방법을 찾았다. 나는 성별 이분법에 따라 적절하게 사회화되어 왔다. 지금 나의 욕망에 잘못이 있을 순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패싱이란 단어가 맴돌았다. 성소수자뿐 아니라, 나와 주변의 누군가도 패싱을 한다. ‘보통의 삶’을 소망한다. 평범한 삶을 소망한다. ‘저녁이 있는 삶’은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사치일지 모르겠지만,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개인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와 우리는 갖추어야 할 것이 많다.
패싱이란 지나치는 일이다. 누구도 가던 걸음을 멈춰 뒤돌아보지 않도록, ‘그들처럼’ 보이는 일. 법학자이자 성소수자인 켄지 요시노는 저서 커버링에서 패싱을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되 타인에게 숨기고자 하는 욕구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벽장 속에 숨어 지내는 것이 아무리 나쁘다 해도 전기충격요법보다는 낫다고 말한다. 거짓말이 아무리 힘들어도 굶어 죽는 것보다 낫다. -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 p32
성소수자가 아니더라도 어떤 나이 대의 여성인 나는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는 것처럼 거추장스러운 질문을 막고 살 때가 있다. 살면서 접하는 소소한 만남, 택시 운전사의 질문이나 가게에 뭔가를 사러 갔을 때 나올 수 있는 질문들 말이다. 근데 나는 그런 만남들도 스트레스였다. 거기에 조금 더 중요한 만남일 경우에는 자괴감을 더한다. 일로 만나야 하는 누군가일 경우, 가족 중의 누군가일 경우, 친구일 경우, 조금 더 긴 기간을 두고 만나는 사람일 경우 그리고 그동안 알고 지낸 시간이 길 경우 나 자신(이때의 나 자신은 어떤 성 정체성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인간 인가 하는 것에 가깝다)을 그대로 드러낼지, 말지 판단한다. 그래서, 나도 그들에게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될지 “뭐야, 저건?”이라고 하는 사람이 될지 선택한다. 그리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그룹들은 삭제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지나치는 사람이 되는 것, 패싱이 성소수자에게 어떤 것인지 생각하지 못했다. 어떤 삶 속으로 들어가 설정해보거나 이입해보지 못했다. 그저 여자가 아닌 나, 남자가 아닌 나, 여자도 남자도 아닌 나로서의 개인 정도의 상상도 버거웠다. 그래,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는 것이 맞겠다. 생각의 폭, 상상의 폭이 남자와 여자의 이분법 안에 있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삶을 생각하고, 누군가의 삶을 생각한다. 뭔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의 삶을 생각한다. 별다른 개인을 먼저 두고 끼워 맞추는 인식의 순서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작가인 희정님에게 존경심을 보낸다. 기록노동자인 그는 많은 성소수자들과 인터뷰를 나누고 이를 현재 우리나라 노동현장을 관통하는 키워드에 따라 나누어 정리했다. 이 키워드 만으로도 한국이라는 나라의 노동 현실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친절한 각주를 통해 다양한 인식의 형태 및 사회인식의 방향들 또한 읽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이 책의 마늘, 정현, 하늘, 이혜, 규원, 채연, 조나단, 성연, 문식, 부영, 나이스, 강표, 우연, 양돌, 수정, 소유, 혜민, 루카, 문식, 미리 그들의 목소리는 우리나라 청년들의 노동 현장에서의 생생한 목소리이다. 그렇기에 나는 책을 읽으며 그들의 삶이 우리 모두의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받았다. 이걸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하나? 적절한 표현을 못 찾겠다. 성소수자인 누군가를 알기 위해 읽은 글에서 망원경이 아니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듯한 우리 사회의 차별의 민낯을 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