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Octopus Teacher

by 붉은낙타



p는 다큐를 보는 내내 ‘아.. 너무 낭만적이야’를 말했다. 한발 한발 다가와 올라오는 문어의 모습이 그렇게 낭만적이었나? 나는 그렇지는 않았는데. 무려 좀 징그럽기도 했는데. 수면위에 고정된 카메라의 시선은 속이 울렁거리게 하기도 했다. 물을 무서워하는 나는 깊은 물속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나라면 저 곳를 보는 일은 절대 없겠지 생각하기도 했다. 오늘 내가 본 다큐는 <My Octopus Teacher>이다. 다큐를 보고 관심이 생겨 검색을 했는데,

〔나무위키에 따르면 문어는 뇌 뿐만아니라 다리도 사고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포식과 같은 행동은 뇌가 직접 명령을 내리지만 나머지 뻗고 구부리는 등의 세세한 동작은 다리가 알아서 한다고. 심지어는 뇌의 명령없이 미각, 촉각활동도 한다. 여기서 머리가 좋다는 말은 문어의 뇌가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발달해 있다는 의미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험을 통한 학습 능력이 있으며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있다고 한다.

문어를 사육하면 문어는 미각(빨판을 통한 감각), 촉각, 시각을 종합하여 개개인의 사람을 구별할 줄 안다. 문어를 사육하는 아쿠아리움이나 사육사의 경험에 따르면, 문어는 각기 확실한 ‘성격’이 있으며, 수줍음, 장난기, 흥미 등이 모두 제각각이다. 문어가 한번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이 접근하면 여러 명이 무작위로 서 있어도 귀신같이 그 사람을 알아채고 그 사람에게 정확하게 물을 뿜어 맞추기도 한다.

사실 문어의 높은 지능은 본능이다. 문어는 부모 자식세대 간의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암컷은 산란 후 수개월 통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알만 품다가 죽는다. 모든 문어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홀로서야 한다. 문어가 부모의 경험을 전해 받을 수만 있었다면, 지구의 판도는 지금과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다큐를 보기 전이었다면 전혀 관심없었을 글인데 보고나서 읽고 보니 다큐의 내용이 다시 이해가 된다. 해수면보다 낮은 곳에 집(이 집도 참 부럽더라. 그런 곳에 그런 돌아올 집이 있었다는 것)이 있었다는 주인공은 현실에 지쳐 번아웃된 상태로 다시 바다로 돌아온다. 그런 주인공이 교감하게 된 주인공은 다름 아닌 문어이다. 집 앞 바다 속 다시마숲. 그곳에서 주인공은 새로운 인생을 세계를 보게 된 셈이다. p는 문어에게 마음이 이입되어 순간 순간 울기도 하고 마음 아파도 했지만, 호기심이야 내다버린지 오래고, 감정이입도 쉽지 않고, 마음도 그다지 따뜻하지 않고, 뭘해도 시큰둥한 어른인 나는 문어에게 그다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의 마음을 움직인건 문어와 주인공의 관계였을까. 혹은 주인공의 깨달음이었을까. 주인공은 한낱 문어의 유약함을 보며 자신의 유약함을 본다. 그리고, 오히려 이 거대한 세상 생태계 속에서 소속감을 느낀다. 자기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문어. 화면에 비춰진 다시마숲은 마음을 이끌기 충분하다. 나처럼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언제 한번 볼 수 있을까 싶은 세계. 동화 소설 속에서 그리는 상상 속 세상으로 보였다. 주인공은 거대한 다시마 줄기 잡고 이리 저리 유영한다. 그의 말마따라 아주 자유롭게.

어제 쓴 글 속의 내가 보였다. ‘할 줄 아는게 없다고 느껴지거나 주변에 도움이 되지 않는, 능력과 성과가 보이지 않는 나의 현재’말이다. 문어의 애씀과 죽음을 보면서 세상 속에서 나 또한 유약한 뭔가일 수밖에 없다는, 그렇게 나도 이 세계의 한 일원임을 위로받았을까.



“모든 생명이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야생 동물의 삶이 얼마나 유약한지 이해함으로써 이 땅에 사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유약하지 알수 있죠. 저는 문어에게 매료됐을 뿐만 아니라 문어가 상징하는 야생의 세계를 사랑하게 됐고 달라진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문어 덕분에 온전히 느낄 수 있었죠. 저도 자연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이 생겼어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