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기대가 많이 없어졌다. 누군가를 존경한다던가 좋아한다던가 하는 것의 무게가 좀 달라진 것 같다. ‘예전의 나는 어땠을까’ 궁금하다. 예전에 나는 누구를 동경하고 존경하고 신뢰했었나. 예전에 나는 사람을 (지금에 비해 상대적으로)쉽게 신뢰했던 것 같다. 한마디 말에도 그 말 외에 그 사람의 전부를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혹은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믿음과 정의가 함께 가는 것처럼 착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뭔가 종교 같기도 하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그것이었구나. 나는 언제부터 사람을 이렇게 믿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했을까. 고등학교? 그건 아닌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사람을 믿기보다 의심하고 궁금해 하고 이성에 한껏 더듬이를 세우고 있었던 때였다. 이성을 기본축으로 모든 것이 제정렬되었으니까.
대학교때. 지성인의 문턱에 들어섰을 때였다. 하하하. 지성인이라니 우습다.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나는 지성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사뭇 애를 썼다. 지식인이 아니라 머릿속의 지식을 행동으로 보여주리라. 지성인이란 건 그런 것이어야해라고 하면서 말이다. 생각과 달리 머리 속에 아무런 지식도 들어오기 전이었다는건 참 부끄러운 일이다.
미처 알지 못했던 사회 전반에 대한 인식과 지식을 한꺼번에 입력하느라 무단히 힘겨웠다. 청춘이었던 나에게 대학교 생활은 힘겨움으로 기억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선배들이란 존재도, 학습도, 강의도, 운동도, 취업도, 하루하루 내일 또 내일이 온다는 사실이 싫었던 때가 기억난다. 어서 빨리 시간이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소화시킬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나에게 다가온 현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생각대로 내가 잘 따라주지 않아서 능력이 되지 않는 나 때문에 힘들었고, 참 재미없는 일상이어서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을 해야 해서 우울했던 하루하루여서 그랬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왜 모든 것을 의무적으로 내가 꼭 해야할 일처럼 생각했을까.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소명처럼 해야 할 것은 하나도 없었음에도. 20살 청춘에 나는 내 앞에 떨어진 상황을 ‘의무와 책임과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신기하다. 무엇이 나를 이러한 관념의 세계로 이끌었을까. 그때 나는 유물론을 학습하고 있었음에도 현실의 나는 아주 관념적이고 추상과 낭만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대학 생활이 나에게 남겨준 가장 큰 결실이 사람에 대한 믿음인 것 같다. 누군가에 대한 믿음. 혹은 무엇에 대한 믿음. 그리고, 한번 믿으면 변치 않아야한다는 것. 이쯤되니 ‘믿음천국, 불신지옥’이 떠오른다. 인생은 그래서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나. 이렇게 대학을 전후로 나는 내 생애 가장 보수적이고 고루한 인생을 살았다.
기대도 희망도 그다지 크지 않은 지금 때문에 ‘예전의 나는 어땠을까’궁금했다. 말랑말랑 희망이 참 컸던 때도 있었다. 사랑에 대한 희망, 사람에 대한 희망, 삶에 대한 희망, 아이에 대한 희망, 미래에 대한 희망, 사회생활을 하고 돈을 벌고 돈을 쓰고 여행을 다니던 시절, 그렇게 말랑말랑한 미래를 그렸었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살았던 시간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기대와 희망을 먹으며 살았을까. 지금의 나는 사람을 포함한 무엇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별로 없다. 있나? 없나? 잘 모르겠다. 그래서 뭔가 걱정되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 사람은 희망하는 무엇이기보다는 ‘연결되는 무엇이라도’였으면 좋겠다. ‘버려도 버려도 없어지지 않는 한줌의 기대’는 나를 초라하지 않게 만드는 무엇이었으면 좋겠다. 왜 갑자기 이렇게 뒤죽박죽 희망과 기대를 이야기하게 되었을까. 지속적인 코로나의 여파일까. 우울의 신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