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외출
방학식을 며칠 앞두고 딸이 친구들과의 외출을 선언했다. 12월의 마지막 토요일에 친구들과 마라탕을 먹기로 했다고.
“그렇게 해.”
"정말?"
믿지 못하겠다는 듯 재차 물어왔다.
버스를 타고 나가는 일정이라 허락을 못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보호자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한 적이 없고 학교는 집 앞이며 학원은 셔틀버스를 이용한다. 이 동네는 대중교통 이용이 편한 지역이 아니다. 학생들은 주로 자전거를 이용한다. 산책할 만한 천변이나 공원, 도서관은 가까운 반면 학원 이외의 상업 시설은 별로 없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결정한 중요한 이유였다.
친구집에 놀러 가거나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먹고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 보통의 동선이었다. 용돈을 줘도 별로 쓸 일이 없다며 지갑을 놓고 가기 일쑤다. 친구들한테 무용담처럼 듣던 매운맛의 마라탕을 먹는다는 것과 더불어 친구들과 긴 시간 놀 수 있다는 생각에 딸은 한껏 들떴다. 주말이 오기 며칠 전부터 버스 노선을 읊으며 어디에 갈 것인지 묻지도 않은 말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드디어 약속한 날,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아이 덕분에 나까지 싱숭생숭해졌다. 준비할 것 없는 준비에 바쁘던 딸이 식당이 문을 여는지 의아한 시간에 집을 나섰다. 3만 원과 버스 카드를 꼭 쥐고 가더니 한참 뒤에 문자가 왔다. 오래 기다려 탔다며 버스 카드에 잔액이 없었고 식당에 가는 중이라 했다.
이후로 여러 차례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영 맛없어 보이는 허연 마라탕(매운 것을 잘 못 먹으니 이미 경험한 친구가 2단계를 추천했단다), 요란한 가발과 선글라스 때문에 누가 내 딸인지 분간이 안 되는 네 컷 사진. 초점도 안 맞고 흔들린 사진을 통해 딸과 친구들의 기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또 몇 시간인가 흘러 노래방 동영상이 도착했다.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배경으로 마라탕에 취했나 싶은 아이들이 격정적으로 흔들어대는 탬버린이 보였지만 역시나 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흥분한 초등학생들은 길거리 음식을 종류별로 사 먹고 잘못 탄 버스를 갈아탄 후 여정을 마쳤다. 못내 아쉬워 근처 놀이터에서 머물다 해가 지고도 한참 뒤 귀가했다.
엄마의 잔소리 없이 자신의 뜻대로 하루를 보낸 아이는 집을 나가기 전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재잘대며 하루 일정을 주워섬길 때는 언제고 마라탕은 맵지 않더냐, 버스는 몇 번을 탔냐 등의 질문에 싱긋 웃으며 짧게 대답했다.
첫 아이의 새로운 경험은 엄마로서의 나에게도 처음이라 덩달아 긴장되고는 한다. 아이보다 앞장서 준비해 놓은 길에 아이가 다칠만한 것들을 치워두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이 그동안 내 역할이었다.
지금 나는 아이보다 뒤미처 서 있다.
가끔 입이 간지러워 앞질러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어쩌겠나. 계획한 대로 일이 흘러가지만 않는 것이 인생이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 나도 성장해 왔다. 부모님께 도움을 청할 때도 있었지만 끙끙대고 매달리다 결론에 이른 적이 많다. 그것이 원하던 것이든 아니든 이후의 길을 모색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아이에게 앞으로 얼마나 많은 처음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득하다. 한편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면 서툴렀던 여러 기억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아이의 선택을 믿고 지지하며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점을 주문처럼 마음에 새긴다.
딸아, 너의 모든 처음을 응원해.
* 제목 사진 출처 : 크라우드픽 / 마지막 사진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