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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 Nov 25. 2022

코티분과 고무줄 치마

나의 할머니

  할머니는 고된 시집살이를 했다. 섣달 그믐날 밤이면 홀시어머니의 곰방대 두드리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했단다. 아이 소식 없이 해를 넘긴다는 매서운 꾸지람을 8년간 듣고서야 아들을 낳았다. 어렵게 얻은 아들이 늦장가를 가게 되었지만 아이는 바로 생기지 않았다. 할머니가 신혼인 동생네 집에 놀러 온 사돈처녀들에게

  “병신이라도 좋으니 손주 좀 안아 봤으면.”

이라는 말은 자라면서 여러 번 들은 일화 중 하나이다.


 3년이 지나 내가 태어나고 할머니의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4년 터울로 장손이 태어나 할머니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지만, 나는 오매불망 바라던 첫 손주였다. 할머니는 나를 부록처럼 달고 다녔다. 할머니는 가장 안전한 길로 나를 이끌었고 예쁜 것만 입에 넣어 주려 했다.


 딸기가 나올 무렵이면 첫물에 손녀에게 먹이고 싶어 어려운 형편에도 꼭 사 오셨다.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딸기 장수는 근으로 달아 파는 딸기를 몇 알씩만 팔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알록달록한 기하학 무늬가 반복되는 주름치마를 입었다. 치마 속 속바지에 꿰매 단 커다란 주머니에는 항상 둘둘 말린 화장지와 경로당에서 민화투로 딴 푼돈이 들어 있었다. 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할머니 치마 속을 뒤지고 부모님께 혼날 때면 그 안으로 숨어들었다.


사람들은 할머니의 총기와 건강의 비결이 손주들 덕분이라고 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가게 되면서 할머니도 등교 준비를 시작했다. 아침이면 주황색과 갈색이 어우러진 버섯 무늬의 원통형 코티분 분곽에서 하얀 분첩을 꺼내 공들여 얼굴을 두드렸다. 내 손을 잡고 30분을 걸어 학교에 데려다 주고 학교를 마치는 시간이면 교문 앞에 기다리고 계셨다. 5학년에 이사를 간 곳에서 버스로 통학을 하기 전까지 난 책가방과 실내화 주머니를 거의 들어 본 기억이 없다. 할머니의 염려 때문에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일은 드물었고 외가에 가면 하룻밤도 자고 올 수 없었다. 세상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 주는 포대기같은 할머니의 사랑은 점점 당연하고 성가시게 느껴졌다.

  


 

 중학교 1학년 여름, 할머니가 계단을 오르다 쓰러진 채 이웃에 의해 발견되었다. 의사는 연세가 많다고 입원을 만류했다. 처음에는 말이 어눌할 뿐 눈빛과 의사소통은 괜찮았다. 얼마 안 가 할머니의 기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물조차 삼키지 못했다. 숨 쉴 때마다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날 때쯤이었다. 부모님이 얼마 안 남은 거 같다며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기말고사 기간이라 누워있는 할머니 옆에서 밤늦도록 공부를 했다. 할머니가 가끔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 같았다.


 밤이 되니 할머니가 천장을 손으로 가리키며 신음 소리를 냈다. 누군가가 할머니를 데리러 왔을까. 할머니 시야를 막아서고 천장을 노려보기도 했다. 기말고사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할머니 옆에서 시험 볼 내용을 정리했다. 할머니 손을 한 번 잡은 후 할머니 귀에 다녀올게 속삭이고 집을 나섰다. 시험을 마치고 나왔는데 집에 돌아가기가 싫었다.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고 버스를 타야 할 길을 걷고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왔다.


 현관 입구에 노란등이 걸려있고 밥과 돈 옆에 엄마가 사 드린 할머니의 분홍색 구두가 놓여 있었다. 할머니의 장롱 속 스카프나 브로치들처럼 할머니가 그 구두를 신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남동생이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와 있었다. 할머니가 누워있던 방에 할머니의 사진과 향이 있었다. 누가 교복 치마를 잡아당긴 듯 무너져 한참을 울다가 우는 이유를 떠올리곤 다시 넋을 놓았다.


 할머니는 내가 집을 나서고 10분쯤 지나 엄마가 살펴보니 숨을 거두셨다고 한다. 이미 돌아가셨으니 시험은 다 치러야 한다는 엄마의 판단에 학교에 연락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내가 오지 않아 무더운 날씨라 입관을 하는 바람에 할머니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 어른들은 마지막까지 손녀가 학교 잘 가는 것 보고 가셨다 했다. 자식들 고생 안 시키고 본인이 많이 고통스럽지 않았으니 호상이라 했다. 호상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자마자 개소리라 생각했다. 할머니는 내가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편히 갈 수 있을까. 발인 날까지 영정 앞에서 밤을 새우며 잡지에서 봤던 죽은 지 며칠 만에 깨어난 사람 이야기를 생각했다. 더운 날씨에 관 속이 얼마나 답답할까라는 생각에 병풍 뒤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화장장에서는 할머니가 눈을 뜨면 너무 뜨거워서 어쩌냐며 몸부림쳤다.


 9살 무렵 무슨 이유에선지 학교 앞 문구점 평상에 앉아 기다리던 할머니 앞에서 짜증을 내며 신발주머니를 내동댕이친 적이 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는 내 빗에 할머니의 하얀 머리카락이 끼어 있던 것을 보고 신경질을 부렸다. 그 기억들은 매번 얼음송곳이 되어 내 가슴을 찌른다. 그때마다 철없고 어린 나를 경멸하고 비난해도 조금도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는다. 분명 할머니는 ‘내 새끼, 가엾어라.’하며 옹이 박힌 두툼한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쓸어 줄 텐데. 

 


할머니는 이불 같았다. 다리에 휘감고 포근함을 한껏 누리다 답답해 차 냈다가도 손을 뻗으면 그 자리에 온기를 품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의 그윽한 분 냄새와 손가락에 감기는 뽀글하고 결 고운 하얀 머리카락이 그립다. 이룰 수 없기에 단 한 시간이라도 비릿한 바람 냄새가 풍기는 할머니의 치마에 엎드려 잠들고 싶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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