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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 Dec 09. 2022

중력을 거슬러

보톡스 중독자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가벼운 한숨이 나왔다.


“따끔할 거예요.”


초강력으로 압축된 뾱뾱이를 이마에 대고 터트리는 것 같았다. 피부 표면을 얄밉게 찔러 대는 주삿바늘이 이마와 미간을 수차례 지나간다.

일주일 간 음주와 사우나를 피하며 주의사항을 준수하면 길게는 6개월까지 이마의 근육을 붙잡아줄 예정이었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을 너스레를 떨며 의사에게 이마 중간까지는 주사를 놔 달라 간청했다. 약물이 퍼지면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보톡스는 주로 이마의 윗부분에 시술해준다. 실제로 그 부작용을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소비의 기본은 가성비.

정해진 약물을 최대한 넓은 면적에 도포할 수 있다면 눈썹 위 잔주름도 저버릴 수 없었다.


     

보톡스를 맞기 시작한 것은 30대 중반부터였다. 빵빵한 볼 때문에 얼굴살이 좀 빠지길 바라던 시절(그런 때도 있었다), 지인의 꾐으로 들렀던 피부관리실 실장님의 예언(피부가 얇아 40대가 되면 주름이 자글자글하리라)대로 점점 늘어가는 잔주름이 거슬렸다.



임신과 출산, 수유 기간에는 맞지 않았더니 미간 사이 ‘川’ 자가 점차 선명하게 자리매김했다. 육아 스트레스가 패인 골마다 쌓이는 것 같았다.

제 나이로 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노안이 되는 시대에 나이 많은 엄마로서 외모에 무심하기는 쉽지 않았다.

     



큰애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학부모 모임에 나가보니 나이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었다. 첫 아이를 20대 초반에 출산한 엄마들은 밖에서 만나면 미혼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싱그러웠다. 수줍은 미소에도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서로의 나이를 확인한 후 초산치고 늦은 편인데 중간은 되겠네 안도했다. 동시에 애는 일찍 낳아 키워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을 되새겼다.

나만 이렇게 생각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저녁을 먹으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던 딸이 놀림당한 같은 반 아이 이야기를 전했다. 너희 엄마는 할머니냐며 몇몇이 놀리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딸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인 친구가 꽤나 안돼 보였나 보다.

우리 엄마가 얘 엄마보다 훨씬 늙어 보인다고 했다며 뿌듯한 얼굴을 내밀었다.

그 친구에게 과연 위로가 됐을까라는 의문은 차치하고, 옆에서 기저귀 불룩한 엉덩이를 흔들며 집안을 어지르는 둘째를 바라보자니 남일 같지 않아 심란했다.

둘째가 입학하기 전까지 자기 관리에 매진해야 학교에 오지 말라는 소리를 안 듣겠다 싶었다.


    

어쩔 수 없는 일에는 특히나 포기가 빠른 편이지만 40대를 통과하며 작아질 때가 많아졌다. 선택과 집중을 외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손해가 많아 마음 다스리기가 쉽지 않다.



운동을 빠지지 않고 영양제를 챙겨 먹어도 아플 때,

아이랑 한바탕 놀고 나면 방전될 때,

사진 어플을 사용해도 내 모습이 썩 괜찮아 보이지 않을 때 등등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힘에 겸허해진다.

아등바등 노력을 해도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디폴트 값이 여러모로 점점 후져진다.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을 때가 많다.


     

MZ 세대의 선호에 대해 아는 체하니 어떻게 알고 있냐며 실실 웃는 띠동갑뻘 후배에게 발끈한 적이 있다.

20년 넘게 10대들과 티키타카를 주고받으며 일했다고, 나이로 사람을 범주화하고 평균 내는 것은 진부하니 개별성을 존중해야 한다며 어리둥절한 표정에 대고 핏대를 세웠다.

너에게는 40대가 안 올 듯싶으냐는 초라한 항변은 양볼에 가득 문 채 다행히 뱉지는 않았다. 100세 시대에 고작 절반도 안 살았는데 여생을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펼쳐질 시간들을 대차게 맞아 보란 듯이 꾸려갈 자신은 없다. 불가항력의 변화들이 겁나기도 한다. 다만 가치관, 판단, 신념 등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로 미래의 나를 기대한다.



어떤 모습이든, 나는 장차 자유롭고 유쾌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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