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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 Jun 22. 2024

학교에서 쉬를 가져오래요

거절의 방법

휴대폰 앱의 1학년 알림장에 글이 올라왔다.


<학생 건강검진>
배부한 소변통에 내일 아침 소변을 받아 내일 등교 시 꼭 제출해 주세요.
(먼저 종이컵 등에 소변을 받은 후 소변통에 넣어 보내주세요.)


안 가져가면 낭패겠네, 깜박할 수 있으니 휴대폰 스케줄러에 알람을 해 놓아야지 생각하고는 그만 잊어버렸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치우는데 아들이 짐짓 진지한 얼굴로 몸을 당겨 앉으며 내 팔을 잡았다.

- 엄마, 잘 들어 봐. 중요한 얘기가 있어.

하는데 입에서 맞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선생님이 강조하는 공지사항을 전달할 때면 느낌표가 연발하듯 서두를 깔고 말을 시작하는 것은 아들의 버릇이다. 그 모습을 보니 낮에 본 알림장 내용이 떠올랐던 것이다.


책가방을 열어 보니 이름 스티커가 붙은 긴 원통형의 작은 용기가 있었다. 서둘러 종이컵을 챙겨 아들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갔다.

-  내일 아침에 소변을 받아야 하니까 종이컵은 여기에 둘게. 잊지 말고 일어나서 변기 말고 종이컵에 쉬해.

변기 물탱크 위에 종이컵을 두며 당부했다.


- 근데 종이컵을 바닥에 놔주면 안 돼?

아들은 주저하며 물었다.

- 안 돼. 식구들이 드나들다 발로 찰 수도 있고 혹시나 그 안이 오염될 수 있어서 곤란해.

- 한구석에 두면 되잖아.

- 그럼 눈에 안 띄어 아침에 잊을 수도 있잖아. 내일 학교에 안 가져가면 번거롭게 병원에 다시 가야 할 수도 있어.


무슨 검사냐며 궁금해하는 남편에게 건강검진에 대해 말해줬다. 남편은 우리 때는 채변 봉투였는데 어쩌고 하며 아련한 추억에 빠져들었다. 그때 아들의 외침이 들렸다.

저기까지 쉬를 맞추긴 어렵단 말이야.

아들은 울상을 짓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남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아, 하고는 빵 터져버렸다.

- 아니, 내 말은, 거기에 놓고 쉬를 하란 얘기가 아니고...

웃느라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아들은 종이컵을 가져다 소변을 받을 생각을 못하고 변기 물탱크 위의 종이컵을 향해 소변을 보라는 줄 알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그건 힘든 일이지, 라며 아들을 닮은 남편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설명을 들은 후 안도하는 아들이 귀여워서 하여간 엉뚱해, 라며 안아줬다.


그런데 문득, 왜 그렇게 말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엄마의 말을 저대로 이해해서 높은 곳에 소변을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면 싫다거나 할 수 없다고 얘기하지 왜 종이컵을 아래에 두라는 제안을 했을까. 그것은 힘들어도 어떻게든 해보려 했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당연히' 해야 한다는 엄마의 말을 거절하기가 힘들었던 게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둘째인 아들에게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우선 첫째를 키워낸 경력자의 여유가 있다. 초보 엄마였을 때는 정답을 찾겠다고 육아서를 뒤적거리고 강연을 들어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아이의 울음과 떼에도 느긋하게 반응하는 엄마들을 보면 내심 부러웠다. 이제는 둘째를 키우게 되니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해졌다. 불러도 얼른 반응하지 않고 다쳐도 쉽게 놀라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었는데도 마냥 아기 같은 느낌이 있다. 뭘 해도 못 미덥고 마땅히 해야 하는 결과물에도 신기해 박수를 친다. 혼자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와줘야 될 것 같고 반복하고 확인하게 된다.


아들은 누나와는 다르게 조심스럽고 신중한 면이 있어 시작이 더딘 편이다. 겁도 많아서 좀처럼 모험은 하지 않으려 한다. 학원에서의 발표회나 축구 경기를 앞두면 며칠 전부터 떨린다는 말을 자주 한다. 막상 발을 디디면 잘하는 것을 알기에 그럴 때마다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믿었다.


할 수 있어, 한 번 해 봐, 별 거 아냐, 괜찮아, 그동안 아들에게 퍼부었던 숱한 격려의 말들을 아들의 자리에서 들어보았다. 두려움과 막막함에 어쩔 줄 모를 때 이 말들이 과연 너에게 힘이 되었을까. 자칫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아이를 등 떠민 것은 아닌지, 한 몸에서 나왔는데 어쩜 이리 다르냐고 하면서도 아이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무시했던 것은 아닐까.


아이에게는 늘 새로운 하루를 으레 알고 있는 뻔한 것으로 단정 짓고 응원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한 것은 아닌지. 묵은 다짐들 위에 또 하나의 다짐을 얹는다.

둘째를 낳아도 나이를 먹어도 초보 엄마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미지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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