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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 Jul 12. 2024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최후의 승자


  아들은 눈물이 많다. 양보다는 횟수가 많은 편이다.

  못생겼다는 누나의 놀림에도, 블루마블에서 아빠에게 땅이며 건물을 팔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눌리는 민감한 눈물버튼을 갖고 있다. 아들의 콧구멍이 벌름거리고 입꼬리가 내려가기 시작하면 가족들은 얼굴을 주시하며 준비를 한다. 이내 ‘우왕’하고 터지는 사태에 대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러다 군대 가서도 울면서 전화하는 거 아냐.

  농담 삼아 남편에게 말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겁이 많고 예민한 면도 염려스러웠다. 민감한 촉수가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다 소진될까 걱정이다. 험한 세상에 단단하게 커줬으면 싶지만 감정을 가두는 것은 더 바라지 않는다. 아들이 울때마다 되도록 울지 않고 마음을 말로 표현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웬만해서는 잘 울지도 않고 삐치는 일이 없던 첫째에 비해 둘째는 당황스러웠다. 잦은 눈물바람에 또야,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아들이 이목구비를 한가운데로 모으며 즙을 짜듯 울때면 귀여워 웃음을 참게 된다.  

   



  요즘 딸과 친구들은 공포 콘텐츠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한 번은 집에 돌아온 딸이 친구가 영화 ‘곤지암’의 짧은 동영상을 보여줬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엄마, 아빠는 봤냐며, 주워들은 공포 영화 제목을 주워섬겼다. 지난번 친구 생일에 방에 둘러앉아 봤다는 ‘심야 괴담’의 소름 끼쳤던 한 토막을 들려주며 목소리가 한껏 커졌다.


난 공포영화 별로 안 무서워.

  

  심드렁한 내 대답에 딸의 기세는 한풀 꺾였다.

  

  예전에 한참 공포 영화를 많이 봤는데 대놓고 무섭게 만들겠다 작정하고 노골적으로 들이대는 설정을 보면 실소가 나왔다. 시시하다 하면서도 괜찮은 작품을 만나면 그보다 무서운 영화를 찾아보곤 했다. 짜릿함이 좋아 스릴러 소설도 즐겨 읽고 놀이공원에 가도 제일 무서워 보이는 놀이기구만 반복해 탔다.

  



  있는 대로 몸을 사리는 지금의 나로 변한 시점은 아이가 생기고부터이다. 누워서 자고 있는 아기를 보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곤히 자는 아이의 코 아래 손가락을 대본 적이 여러 번이다. 건강보험료가 아까울 정도로 어지간한 감기 정도는 참고 넘어갔는데 콧물만 흘러도 병원에 갔다. 독감 예방접종도 매년 맞았다. 과속카메라가 안 보이면 액셀을 밟아댔는데 초보 때처럼 신중하게 운전대를 잡았다.


  아이를 품었던 자리를 대신 채우듯 내 안에 감정이 흘러넘쳤다. 안 보이던 것들에도 마음이 쓰였다. 아이 사고와 관련된 뉴스 기사는 헤드라인만으로도 밤새 뒤척였다. 내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니 환경 관련 이슈들이 바짝 다가왔다.


  겁 많은 소심쟁이가 된 이유가 지켜야 하는 소중한 존재들 때문인가 생각하며 감상적인 기분에 빠졌들었다. 문득 앞에 앉은 초딩들의 꼬물거리던 모습이 그리워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 신생아 시절 사진을 찾아보았다.

 



  그때, 누나와 엄마의 대화를 옆에서 조용히 듣던 아들이 입을 열었다. 신비아파트도 무서워해 얼마 전까지도 굳이 다른 사람 등 뒤에서 힐끔대던 녀석이다.


누나,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화난 엄마야.
엄마가 신비아파트보다도 무섭거든.


  딸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도 괴물도 이겼지만 씁쓸한 승리였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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