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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남매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집 앞이다. 아파트 정문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거리라 아이 걸음으로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입학식 다음날부터는 혼자 등교하는 1학년도 제법 보인다.
우리 집 1학년도 씩씩하게 혼자 가겠다 외쳤지만 등하교는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기가 무섭게 냅다 뛰는 아들의 뒷덜미를 잡아챈 적이 여러 번이었기 때문이다.
교실 밖까지 학부모의 출입이 허락된 입학 후 첫 일주일이 지나고 일주일은 교문 앞에서 까치발로 배웅했다. 차츰 꾀가 나기 시작했다.
누나랑 가면 딱 좋겠다는 생각에 딸을 앉혀놓고 설득을 했다. 옆옆집 남매와 형제들 사례에 이어진 강요와 회유에 못 이긴 딸이 '어차피 내년엔 중학교 가니깐 올해만 하면 되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는 나도 같이 안 가지.' 라며 아들은 삐죽거렸다.
그렇게 해서 1학년보다 십 분 이른 6학년 등교 시간에 맞춰 일찌감치 친구들과 만나는 누나를 따라 아들도 서둘러 집을 나서게 되었다.
한두 달 지나자 아들은 누나처럼 자기도 친구들을 만나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는 1학년 엄마들도 별로 없고 시간을 맞추는 것도 번거로웠다. 친구가 약속 시간에 못 나오거나 하면 휴대폰이 없는 아들은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놀이터에서 놀던 중 아들의 친구 엄마가 물어왔다.
리오는 어떻게 학교 가나요?
누나와 같이 간다는 말에 혼자 다니던 참에 잘 됐다며 그 시간에 친구를 내려보내겠다고 했다. 며칠 뒤 다른 친구의 엄마가 얘기를 듣고 그 친구도 합류하게 되었다. 이제 아침마다 1학년 남학생 세 명이 나란히 손을 잡고 학교에 간다.
아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늘도 친구들이랑 학교에 갈 수 있는 거냐며 눈을 빛낸다. 딸은 매일 같은 시간에 약속 장소에서 동생의 친구들과 자신의 친구들을 만난 뒤, 1학년들을 앞세우고 그 뒤를 따라 등교하고 있다. 딸의 말에 의하면 1학년들은 처음에는 얌전히 걷다가 가위바위보와 잡기 놀이를 하며 교문까지 뛰어가는 모양이다.
1학년의 등굣길이 안심되지 않는 것은 우리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버스로 대여섯 정거장 거리였던 것 같은데 그 길을 매일 아침 할머니와 동행했다. 가뜩이나 키가 작은 손녀가 짜부라질까 대신 책가방을 멘 할머니가 앞섰다. 어깨는 가벼웠지만 할머니와의 등굣길은 심심했다.
혼자 가거나 친구들이랑 가는 아이들을 보며 가끔 투덜대기도 했는데 언젠가부터 친구랑 만나 학교에 같이 가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우리 집에서 학교 가는 길의 중간쯤에 살고 있었다. 길가에 친구 엄마의 가게가 있었고 가게 안쪽에 방이 하나 있었다. 할머니가 친구 엄마랑 가게에서 담소를 나누시는 동안 방에 들어가 그제야 아침을 먹는 친구를 기다렸다.
친구의 밥상에는 매일 거의 비슷한 반찬이 놓여 있었는데 그중에서 김이 가장 또렷하게 기억난다. 친구의 엄마가 참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가지런히 반찬통에 담아두었을 큼직한 직사각형의 김. 친구는 그 김에 밥을 야무지게 싸서 입에 넣으며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소반 위에 턱을 괴고 친구의 밥 먹는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며 학교로 향하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잊고는 했다.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지는,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의 이야기도 친구랑 손잡고 학교에 가는 길도 마냥 좋았다. 어차피 친구네 가게에 가서 한참 기다릴 것이 뻔한데도 아침마다 서둘러 집을 나섰다.
또 하나의 등교에 관한 기억은 고3 때이다. 버스 정류장은 4층 내 방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 뒷길을 지나야 갈 수 있었다. 높은 방음벽과 키 큰 나무들이 우거진 뒷길은 한적하고 조용했다.
집을 나선 어느 날 뒤를 보니 내 방 창에 엄마가 보였다. 장녀에게는 엄격하고 살가운 말을 건네는 법이 없던 엄마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건물에 가려 안 보일 때까지 엄마를 돌아보며 걸어갔다. 엄마는 그후로도 수능 시험 전날까지 빠짐없이 창가를 지켰다.
당시에는 등교 시간이 이르기도 했는데 버스를 갈아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보다도 보통 30분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성적과 상관없이 아침이면 졸음과 무거운 가방만으로도 몸이 땅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터덜터덜 걷다 혹시나 하고 중력을 거슬러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자리에 항상 엄마가 있었고 엄마의 담담한 눈빛은 단단한 등받이가 되어줬다.
오늘도 엘리베이터에 탄 남매에게 힘차게 손을 흔들어 주고 카톡창에
엘베 타고 내려갔어요.
라고 썼다. 잠시 후
우리 OO이도 나갔어요.
라는 톡이 올라오고, 약속 장소가 내려다 보이는 동에 사는 친구의 엄마에게서도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이들 만났네요.
곧이어 딸이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출발해!
이렇게 다시 하루가 시작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