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집어삼킨 불안

어릴 때 내가 생각했던 나, 존재와 불안,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것

by 하얀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을까.


적어도 남들이 말하는 사춘기라는 게 찾아온 이래로 나는 생각하는 시간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친구와 어울려야 했을 시기에 빌어먹을 역병이 찾아와서 그랬나, 아늑하게만 느껴졌던 집이 더 이상 날 안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천성이 사람을 좋아하고 정이 많고 쉽게 용서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인데 어쩌다 보니 그 모든 것의 정반대인 삶을 살고 있었다. 눈을 떠보니 나는 내가 아닌 것만 같아서 불안했다.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그때의 혼란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나도 남들이 다들 하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다. 존재를 묻는 질문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하나도 알지 못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내가 왜 살아있나? 생물학적 접근이 처음에는 정설이라고 생각했다. 난자와 정자의 결합, 세포 분열, 생명의 탄생. 근데 더 나아가보니 내가 본질적으로 궁금한 건 내 생각의 발원지였다. 뉴런의 신호 말고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육체와 정신의 연결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과학이 증명했지만 여전히 미궁인 것들에 관해 궁금해했다. 언젠가 강연을 들었는데, 과학에 100%, 완전한 건 없다고 한다. 그러면 과학이 증명한 것들도 하나의 이론일 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 어려운 문제가 됐다. 사람이라서 사람에 대해 다 알 수 없나, 생각했다.

무얼 생각하며 성장했나. 성장을 했나? 나는 내가 아직도 어린아이 같다. 그냥 하루 종일 방 안에 누가 가둔 것도 아닌데 갇혀서 나오지 못하고 울던 애가 아직 그 자리에 있다. 사랑받고 싶어서, 사람이 그립다는 핑계로 사랑을 말했던 내가 아직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다. 무엇이 진심인지도 몰랐던 내가 아직 내 속에 남아서 때가 되면 날 불안하게 한다. 사람들이 내 주위에 영원히 있을 수 없다는 걸 아는데, 그걸 알면서도 사랑받고 싶어서 예쁘게 행동하려고 하고 꾸며내던 내 모습이 아직 그 자리에 있다. 사랑받는 일이 너무 중독적이게도 좋아서 이미 충분한데도 더 원하는 게 중독자 내지는 병자의 모습을 띠고 있다. 나는 내가 너무 싫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했던 일들이 지겨워졌을 때 큰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으로부터 받는 사랑에 중독되어서 내가 날 사랑하면서 했던 일들, 내가 그 일을 할 때 날 자랑스럽다고 여겼던 일들은 뒷전이고 잘 보이고 싶어서 하는 일들, 남들 눈에 예뻐 보이는 일들에 열중했다. 사실은 지금도. 나는 이 여행이 정말이지 끔찍하게도 오고 싶지 않았는데, 생각해 보면 내가 이 일을 원해서 시작한 게 아닌데 결국 모든 게 내 책임이라고 하면 내 책임이 되었다.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된 것 같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지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용기 있는 사람도 아니고 용감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든 것들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집착이 많은 사람이고 사랑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누구보다도 한국에 살고 싶어서 모순적이게도 한국을 벗어나려 애쓴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기에 한국은 내게 그것들을 허용하지 않았다. 나는 남들이 만든 기준엔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었고 내가 만든 기준에는 남들의 기준은 부족할 만큼 작아서 그곳을 벗어나면 더 큰 세상이 있을 줄로만 알고 그렇게 살았다. 세상은 그 작은 기준들이 정한 기준대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는데, 다 똑같은 ‘사람’이 만든 것이라 결국 내가 완전히 만족하게 될 일은 없을 텐데도.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성취해냈어야 하는 것인데도 나는 그걸 외면하며 살았다. 내가 내 입으로 늘 말하던 ‘최대한 피하자.’의 결과가 이것이라면 나는 한국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직 나는 그곳을 바꾸고자 시도해 본 적도 없고 그 정도의 힘이 아직은 없으니까. 아니, 사실은 가졌는데도 날 과소평가 했으니까.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자랐을까. 나는 세상을 생각하며 살았다. 나는 내가 사는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하길 원하며 자랐다. 숫자로 표현되는 디지털 세계를 혐오했고 익숙해지는 데에 얼마간의 시간이 걸렸다. 나는 지금 내가 이것들에 익숙한 것이 물론 내 삶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알아서 하고 있지만,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종이와 펜이 더 익숙하고 좋은 사람인데 살아가려면 배워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디지털 자료는 지금의 우리를 기록하는 자료에 그친다. 결국 남은 자료는 방수 처리된 종이와 유화로 그린 그림뿐이다. 지금 내가 내 옆에 있는 물 잔을 쏟아서 이 기기가 멈춘다면, 이 글도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채 그렇게 숫자들 사이 어딘가로 흘러가겠지 싶다. 내가 재능이 없어서 싫어하는 게 아니냐고 물으면 그것도 맞다. 맞는데, 목적이 있다면 그것을 성실히 해낼 수 있는 매체를 선택해야 하는데 나는 왜 온통 숫자뿐인 세상을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 0과 1로 이루어진 세상을 배우는 것은 이미 고도로 진화해 버린 내 뇌가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가 글을 써서 칭찬을 받은 것은 6학년의 일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던 나는 외동이라 일찍이 가지게 된 휴대전화를 전화의 목적으로만 사용했던 착한 어린이였다. 전화, 문자, 가끔 카카오톡을 하긴 했으나 그것도 아주 나중의 일이고, 만 5세의 나이로 디지털 환경에 노출된 것 치고는 미디어를 접하게 된 시기가 아주 늦다. 게임도 뭣도 하지 않던 내게 또 다른 형태의 활자인 웹툰은 신세계였다. 4학년의 일이다. 나는 새벽까지 작은 화면의 작은 글자들을 읽고 또 읽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작은 화면 안에 세상의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가 지금 가장 먼저 생각나는 내 인생 최초의 진지한 장래희망은 웹툰작가였다. 그것도 불법 사이트의 사용자가 내 주변에만 수십 명이라는 것을 깨닫고 무너졌지만, 아무튼, 나는 글도 그림도 잘 쓰고 그려야 하는 웹툰작가가 되고 싶었다. 나는 당시엔 굉장히 진지했다. 그 꿈을 비웃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곧장 내게는 그림 재주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작가로 꿈을 바꾸었고 글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없다는 건 진즉에 알아서 내 얘기를 하는 일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상기하기 전까진 말이다. 나는 정말 내가 잘하는 일을 뽐내는 일에만 집중했었다. 내가 잘하는 일을 잘 해내서 인정받고 그 일을 통해 돈을 벌고 싶었다. 내 꿈은 아니었다. 남들이 인정한 일을 잘 해내고 싶은 인정욕구였지, 그게 내 꿈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났다. 고입과 대입을 거치며 나는 굉장히 현실적이지만 어딘가 엇나간 사람이 되었다. 가고자 했던 곳을 가지 못하고 좌절당한 경험은 나를 굳이 '낭만을 좇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무엇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도 모르고 남들이 하지 말라고 하니까 하고 싶다고 했다. 대학 진학을 그렇게 했으니, 얼마 못 가서 깨달았다. 내가 그렸던 내가 이 모습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성적에 맞추고 남들이 하지 말라는 일을 하고 보니 내가 원하던 일은 그냥 반항이었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내가 원하던 일이 아니라 남들이 바라지 않던 내 모습이었다. 그런데 내가 나쁘지 않게 해내서 인정을 받으니, 그건 그거대로 모순이었다. 그냥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이 진짜로 하고 싶은지 다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돈은 내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대학교 2학년이 되기를 포기했다.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1년이면 대학을 즐기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원래도 뭔갈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정확히 9개월 만에 모든 것에 질렸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나니 살 이유까지 확실하게 잃은 기분이었다. 분명 이 상태로 집-한국-기숙사 세 곳 중 한 곳에 있었다면 살아 있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살아 있었더라도 제정신은 아니었을 거라 맹세한다. 사실 여기에 온다는 계획만 없었더라면 모든 일이 더 순조로이 해결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다 이렇게 치부하고 싶은 것일지도.

생각이 끝도 없어지는 계절이다. 이곳의 계절은 가을을 향해 가고 있는데 밤은 길어지고 낮은 짧아지는 것이 그 증거이다. 처음에 왔을 땐 9시가 넘어도 넘어가지 않던 해가 이제는 순식간에 떨어진다. 그사이에 집도 바꾸고 생각도 바꾸고 사람도 바꾸다 보니 어찌어찌 시간은 흘렀는데, 시간 대비 얻은 건 없는 것 같다. 불안하다. 종일 불안이 날 먹는다. 거의 다 집어삼킨 불안은 몸집을 키워서 내가 나를 볼 수 없게 한다. 나는 요즘 날 잘 모르겠다.


불안이 나를 좀먹는다는 걸 실감한다. 누군가는 가을을 탓할지도, 혹은 나의 젊음을 탓할지도 모르겠다. 젊을 때, 이십 대 초반에, 아직 체력이 있을 때 해야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확히 내가 이곳에 오던 날도 그런 얘길 들었다. 열정으로, 젊음으로 뭐든 해낼 수 있는 나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회는 생각보다 늙은 것이어서 내가 끼어들기엔 좀 버거운 감이 있다. 내가 몰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세상 살이 어렵다는 걸 누가 모르나. 사람 두 명 이상만 모여도 그걸 사회라고 하는데, 수천만 명이 모이고 수십억 명이 모인 나라에서,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게 어려운 일일 줄 알면서도 몰랐다. 쉽게 돌아 가려다 생각보다 정면으로 세상을 마주해 버렸다.


뉴질랜드라는 화산섬에 오면 우리는 익숙함을 느낄 것이다. 산이 많고 바다가 있고 물가가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현지에서 일을 하면 전혀 비싸지 않게 느껴질 것이지만, 대부분이 단번에 일자리를 찾지 못하니, 한동안 샌드위치를 싸 들고 다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도 별 거 안 든, 한 없이 가벼운 샌드위치를 먹으며 살게 될 것이다. 낭만 가득한 햇살을 기대했겠지만 생각보다 따갑고 아플 것이고 침대 하나 들어가면 완전히 가득 차는 방에는 매트리스 커버만 있어서 이불이며 베개까지 전부 돈이 드는 기적을 마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름대로 만족한다. 공기가 맑고 공원이 여기저기에 있어서 돈들이지 않고 놀 수 있고 커피 내리는 냄새가 가득한 거리를 걷다 보면 길거리 공연이 늘어져있고 즐거운 신혼여행객들이 한바탕 웃으며 걸어가는 거리를 좋아한다. 작은 방이지만 한눈에 도시 야경이 내다보이는 우리 집도 좋아한다. 세상에 위험한 것 투성이라지만 9시가 넘어야 겨우 해가 지는 여름의 밤에 잔디밭에 앉아 떠들고 있자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른다. 밝고 활기찬 라틴 친구들과 한바탕 수다를 떨고 집에 들어오면 이게 살아가는 맛인가 싶고 예쁘게 입고 일본 친구들과 함께 거리를 걸으면 이게 여행이지 싶고 기나긴 행정 절차를 기다리며 말을 섞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아직 10대였을 때 이런 곳에서 살고 싶어 했던 것을 잊었었나 보다. 혼자 밥을 해 먹고 공원에서 책 읽고 잠깐 아이스크림을 기다리다 옆 사람과 대화하는 일을 꿈꾸며 자랐는데 막상 이곳에 오니 살기 바빠서 잊고 있었다. 이게 살아가는 맛인데, 드디어 이곳에 와 놓고 쓸모없는 다른 걱정을 하느라, 이미 끝난 질문을 되풀이하느라 전부 잊고 있었다. 여기선 이런 생각 안 하기로 하고 왔는데 습관처럼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구덩이 하나도 내 마음대로 못 파는 외국인인데 그걸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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