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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 Oct 14. 2019

마지막 이사

[매일의 축제] 세 번째 이야기


엄마와 아빠는 결혼 후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빠의 남동생들과 한집에 살았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이 떠오르는 동네에 자리한 집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보이는 마당, 걸을 때마다 삐걱 소리가 나는 나무 마루, 마당 한쪽에 작은 화장실이 있는 옛날 집. 빨래를 널어둘 곳이 마땅치 않아 기와지붕 위에 두 개의 장독대 사이를 줄로 엮어 빨랫줄을 만들었다. 낮은 턱을 지나서 들어가는 부엌은 난방이 되질 않아 겨울이 오면 엄마의 발은 꽁꽁 얼기 일쑤였다. 연탄불이 전부였던 부엌에 가스레인지가 생긴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마당과 마루 사이엔 집안을 오갈 때 걷는 타일 바닥이 집을 빙 둘러 있었는데, 엄마가 아기였던 나를 그곳에 앉혀두고 잠시 부엌에서 요리하다 보면 그새 난 마당으로 굴러가 있었다고 한다.


방은 총 3개였는데, 그중 1개가 엄마, 아빠의 방이었다. 창문 하나 없는 좁은 방을 답답해하던 엄마를 위해 아빠는 어느 날, 무턱대고 창문을 만들겠다며 벽을 깼다고 한다. 지나가던 동네 어른께서 창문은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니라며 틀을 잡는 방법을 알려주셔서 겨우 완성되었다던 작은 창. 틈새 바람을 막기 위해 끼워둔 건 동화떡집 이름이 쓰여 있는 종이박스였다. 나중에 우리 가족이 집을 떠났을 때도 한동안 그 골목을 지나면 여전히 길가를 향해 뚫려 있는 창문의 박스가 보였다.


나도 이 집에서 태어나 여섯 살까지 자랐다. 어릴 적이라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아도 이 집을 떠올리면 풍경의 조각이 그려진다. 북적북적 대가족이 모여 살던 시절을 지나 멀지 않은 곳에 우리 가족이 살 집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건물 1층의 상가에서 무엇이든 하려면 찻길 앞이어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주장에 따라 기다랗게 가로수가 서 있는 2차선 도로 앞, 맞은편엔 낮고 오래된 아파트가 있는 위치였다. 할아버지의 주도 아래 시작된 집 짓기는 봄에 시작되어 여름에 끝이 났다. 다만 동지가 지난 후 이사를 와야 잘 살 수 있다는 옛이야기 때문에 집이 완성되고 나서도 한동안 예전 집에 살아야 했다. 엄마는 더운 여름, 마땅한 욕실이 없던 옛집 대신 새집을 찾아와 깨끗한 욕실에서 목욕했고, 매일 집을 닦고 또 닦았다. 무릎이 빨갛게 쓸리는지도 모른 채로. 그저 마냥 꿈만 같았다고, 여전히 그때를 떠올리면 엄마는 설레는 표정을 짓는다.


빨간 벽돌로 쌓은 건물은 4층이었다. 1층은 현대시장 동화떡집의 분점과도 같은 건우떡집, 2층은 세를 주었고, 3층엔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이 살았고 4층은 엄마, 아빠 그리고 우리 자매가 함께 지냈다. 애초에 가족이 함께 살 집으로 지었기 때문에 쓰임새에 따라 3층과 4층 구조나 방의 개수가 달랐다. 대 가족이 먹을 음식이 만들어질 3층의 부엌은 크게, 라면과 같은 간단한 요리만 하게 될 4층의 부엌은 작게 만들었다. 엄마는 그 당시 어느 책에서 한샘의 시스템 싱크대가 처음 출시되었단 기사를 보았고, 집을 짓는 과정 중 유일하게 부엌에 관한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예산 절감을 위해 1/6 가격인 거북표 싱크대를 설치하자는 할아버지에 맞서 부엌은 내가 주로 사용할 공간이니 직접 선택하고 싶다고 주장한 것. 아빠의 응원에 힘입어 결국 우리 집엔 엄마가 꿈꾸던 싱크대가 기억 모양으로 넓게 설치된다. 물론 싱크대의 높이도 엄마의 키에 맞췄다. 그뿐이 아니었다. 창이 있는 부엌을 갖고 싶다는 엄마의 소망에 따라 작은 창문도 만들어졌다. 하얀색의 원목 싱크대는 지금까지도 경첩이나 문짝 하나 뒤틀림이 없다며 감탄하는 엄마. 얼마나 자주 닦으며 아껴왔는지, 거의 3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단정하다.


집이 완성되고 그해 12월 말,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나에겐 결혼 전 처음이자 마지막 이사인 셈이었다. 바로 위 골목이라 가족들이 직접 짐을 옮겼는데, 나는 삼촌들이 밀던 손수레를 타고 새집으로 왔다. 이사 후에는 매일 집들이가 이어졌다. 많은 손님이 건넨 집들이 선물은 3층과 4층 베란다 천장까지 가득 채웠다. 5년 동안 휴지와 세제를 사지 않아도 충분했다던 엄마의 말만큼.


새로운 집에서의 낯선 일상을 맞이하며 가족들은 그동안 바라 왔던 작은 일을 마음속에서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거실에 커다란 어항을 설치하고 물고기를 키웠으며, 옥상에서 커다랗고 깊은 들통에 막걸리를 담갔다. 옥상엔 막걸리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었다. 할머니와 엄마가 직접 담근 된장, 간장, 고추장이 담긴 장독대가 쪼르르 놓여 있었고, 어느 해엔 주렁주렁 포도가 열려 작은 과수원에 온 것만 같았다. 나뭇잎 속에 숨어 있는 탱글탱글한 포도를 한 알 톡 따 먹던 순간이 여전히 생생하다. 할머니는 베란다에서 작은 식물을 키우며 새로 꽃을 피울 때마다 기뻐했다. 아빠는 친구들을 초대해 커튼을 치고 커다란 텔레비전으로 영화관을 만들었으며, 엄마는 뜨개질로 촘촘한 커튼을 만들어 부엌과 거실을 나누는 천장에 달았다. 무엇보다 엄마는 추운 겨울 마당에서 빨래하지 않아도 되는 사실만으로 천국에 온 기분이었다고 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내 나이와 크게 차이 나지 않을 만큼의 세월이 쌓인 집엔 오늘도 가족이 산다. 낡은 주택은 들여다봐야 할 곳이 자꾸 생겨나기 마련. 특히 겨울이 오면 덩달아 아빠도 바빠진다. 수도가 얼지 않도록 수돗물을 밤새 쫄쫄 틀어둬야 하고, 창문마다 에어캡을 꼼꼼히 붙여야 한다. 빨간 벽돌집은 우리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지나왔다. 어릴 적 내가 창문에 붙여둔 스티커나 내 키를 연필로 그어 놓은 할아버지 방의 벽지는 사라졌지만, 나무를 촘촘히 이어 붙여 멋스러운 천장 장식, 시간의 색이 그대로 물든 나무 창틀은 여전히 우리 가족을 감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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