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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했다. 드디어, 그리고 겨우.

by 태태

"6월 말만 되면 난 자유야."

이 문장을 얼마나 마음속으로 되뇌었는지 모르겠다. 때로는 점심을 먹으며, 때로는 엘리베이터에서, 때로는 출퇴근길에서. 이 말은 내게 주문 같았다. 스스로에게 걸어두는 마법이자 최면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퇴사했다. 드디어, 그리고 겨우.


퇴사 당일에도 특별한 일은 없었다. 평소와 같이 업무를 하며 기획안을 작성했고, 담당자 변경건 메일을 작성했다. 그리고 출입카드를 비롯한 여러 전산장비를 반납하며 건물을 나왔다. 무언가 뿌듯하거나 감격스러울 줄 알았는데, 그저 '이제 끝났구나'라는 감정만 묵직하게 남았다.


이 회사에서의 6개월은 살아낸다는 표현이 맞다. 난 '견딤'을 배웠고, 회사의 매운맛을 배웠다. 시키는 대로 해도 부족하단 소리를 들었고, 애매한 상황 속에서 애매한 태도로 버텨야 했다.


그럼에도 퇴사 직전의 나는 조금 달랐다. 적어도 기획안을 몇 번이나 되돌려 받으며 배운 것들이 있었고, 나름대로 '내가 낼 수 있는 답'을 말해보려 노력했다. 퇴사 소식과 함께 담당자 변경 메일을 보내며 외부 담당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을 때, 어떤 분이 내게 이렇게 회신 주셨다.

"그동안 함께 작업하면서 보여주신 책임감과 배려 덕분에 강의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한 줄에 마음이 찌릿했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그렇게 보였구나. 책임감과 배려라니. 나는 6개월 동안 늘 부족한 사람이었는데, 누군가에게는 그런 기억을 남았다. 그 말 한 줄에 6개월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졌다.


퇴사한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도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업무용 노트북을 켜지 않아도 괜찮았다. 사내 메신저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고, "태태님, 잠시 시간 괜찮으세요?"라는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지 않아도 된다.

너무 좋았다.

그리고 허전했다.


몸은 자유지만 마음은 묘하게 붕 떠 있었다. 6개월 간 나를 짓누르던 구조가 사라지자, 동시에 나를 붙잡고 있던 리듬도 사라졌다. 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면 뭘 해야 할까? 내 안의 질문이 다시 일어난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은, 이제 나는 그런 질문에서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버티면서 배운 건 기획안 작성 능력이 아니었다. 진짜 얻은 건 이해받지 못해도 나를 밀고 나가는 연습이었다.


앞으로도 버거운 순간이 올 것이고, 누군가는 나를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만은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으려 한다. 이 무능해 보이고, 부족했던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퇴사했다.

드디어, 그리고 겨우.

그리고 지금,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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