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두 달간 내 취미는 재개봉 영화 보러 가기였다. 첫 글로 언급했던 죽은 시인의 사회부터 시작해서 클로저, 미드나잇 인 파리, 500일의 썸머를 봤었다. 주로 혼자 보러 갔는데,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의 감상평에 휩쓸리지 않고 혼자서 영화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혼영 취미는 500일의 썸머를 마지막으로 끝나버렸다. 운명을 믿는 남자 주인공과 현실주의적인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는 내 마지막 연애와 너무 비슷했다. 내가 노력하면 상대방은 현실주의에서 운명론자로 바뀌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었다. 남자 주인공도 마찬가지였다. 그 과정에서 남자 주인공은 찌질하게 행동하기도 했는데, 정말 보는 내내 불쾌해서 중간에 나가고 싶었다.
나는 정말 찌질했다. 을이 되는 연애가 편하다고 늘 말해왔지만, 내 연애는 호구였다. 상대방이 나에게 마음이 크지 않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내가 다 퍼주면 좋아할 거라고 바보같이 믿었다. 상대방이 술 마시고 잘못을 했어도 내가 쿨하면 넘길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차인 건 나였다.
헤어진 후에도 나는 깔끔하지 못했다. 물론 연락해서 다시 만나달라고 애걸복걸하지는 않았다. 그저 내 눈에 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상대방 스토리를 안 보이게 설정해 두었다. 시원하게 차단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둔 것도 아니었다. 혼자 쉐도우복싱하듯이 숨겨버렸다.
지금은 만나는 사람도, 연락하는 사람도 없다. 다음 연애를 하기 전에 나를 가장 먼저 챙기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쉬었던 운동도 다시 다니고,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지인들도 많이 만나고 있다. 주말엔 서점에 들러 혼자 책을 읽다 오기도 하고, 날이 좋을 때면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산책을 즐긴다.
지금은 누군가와 만나기 전에 내 인생에 있어 갑이 되는 연습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