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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맞다 강선생 Feb 25. 2024

새 학기를 준비하는 담임의 자세

비장한 뽑기

 "선생님은 이미 아시잖아요! 저 몇 반이에요? 담임 선생님은 누구세요? 살짝만 알려주세요, 소문 안 낼게요!"

   많은 학생들이 3월 새 학기를 앞두고 새로운 반과 담임 선생님을 궁금해한다. 나도 모른다며 아이들 등을 떠밀어 돌려보내기 바빴으나 이를 믿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오리주둥이가 되어 찡얼거리고는 매번 찾아오는 것을 보면 분명 그렇다. 하지만 빈말이 아니라 정말 모른다.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최종 선택과목의 윤곽이 뚜렷해질 때 즈음 담임에게 메시지가 온다. ‘학교 폭력, 수업 분위기 저해 등의 이유로 분리해야 할 아이들을 알려주세요.’ 정말 심각한 사안의 아이들이 취합되면 선택과목과 함께 고려하여 반 편성에 들어가는 것이 12월. 그리하여 최종 윤곽이 나오는 것은 1월 초중반 즈음. 이제 반 편성은 완료되었으나 문제는 담임이다. 전입, 전출, 휴직, 발령, 계약 등의 아주 많은 이슈로 많은 사람들이 바뀌고 뽑히며 오가기에, 아이들이 궁금해 몸을 꼬아갈 때 즈음에도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는 것이다. 업무분장 희망표 제출과 인사위원회의 조정을 거쳐 교장, 교감선생님의 최종 결정에 따라 최종안이 결정된다.

 이 모든 사항까지 정리된 2월 중순! 이때가 되어야 부서가 결정되고 담임 여부를 알게 되며 그다음 반을 결정한다. 교사 구성에 변동이 적은 사립의 경우 1학년 6반이었던 담임이 또다시 2년, 3년간 같은 반을 맡는 경우도 있었으나, 발령과 전입/전출, 휴직의 이슈가 많은 대부분의 공립학교는 (정말 놀랍게도,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지상 최대의 공평하고 공정한 방법인 제비 뽑기/사다리 타기 등등의 방법으로 최대한 공정하게 반을 뽑는!!다. 

 새 학교의 학년 부장님께서 아이들의 명렬표가 든 학교 봉투를 나란히 10개 늘어놓으셨다. 누구 하나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고 망설인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리라. 1년 나의 희로애락과 어쩌면 생로병사까지 함께 하게 될 우리 반..나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내어 맡기며 간이고 쓸개고(난 이미 없지만) 모든 정신과 혼을 가져갈 우리 반....!!!이 결정된다. 눈을 부릅!뜬 채로 간절히 기도하는 사이, 몇 분의 선생님께서 담대하게 선방을 치셨고, 빠르게 사라지는 봉투 중에서 마지막 봉투를 집지 않기 위해 가속도가 붙는다. 슈슈슈슈슉-3개쯤 남았을 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우리 반은 5반! 이름을 하나씩 들어다 본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이들이지만, 왠지 이름이 벌써 귀엽다. 얼굴도 모르는 내 새끼들. 1년 동안 희로애락 생로병사를 함께하게 될 내 아가들. 

 고 1만 내리 7년을 맡고, 처음인 고2의 담임이라 적지 않은 부담과 함께 긴장감이 몰려온다. 1학년 담임은 진학지도와 대입전형을 꿰는 듯이 알고 있지 못해도 마법의 최종 문장 “어머님, 아직 고1이잖아요. 힘내서 잘 달릴 수 있게 제가 돕겠습니다.”로 어떻게 갈무리가 되었다면, 1년간의 데이터가 나와 있고 선택과목까지 결정을 마친 고2는 얘기가 다르다. 아이의 스펙트럼이 어느 정도 정해지고 방향성이 잡혔기에, 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가이드와 안내가 들어가야 한다. 입시 공부를 목숨 걸고 빡세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허들인 세계사 수업. 한국사야 7년간의 짬바가 생겨(그래도 귀요미 수준이긴 하지만..) 아이들이랑 여러 가지 게임도 재구성하고 수행평가도 다채롭게 볼 수 있지만, 말 그대로 ‘세계’의 역사를 다룬 세계사는 6년 전에 딱 한번 가르쳐보고 무의식의 저 너머로 사라진 아련한 옛 학번과 같은 과목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할까 걱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소띠에 황소자리인 운명처럼, 교내의 전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와 업무를 주관하는 연구부 업무도 맡은 올해.. 멀티 플레이어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찬다. 설레는 마음이 들면서도, 동전의 양면처럼 두려운 마음도 든다.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서일까. 두 과목을 실수 없이 잘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한국사/세계사를 싫어하면 어쩌지, 역사를 싫어하면 어쩌지, 공부에 흥미를 잃으면..? 학교를 싫어하게 되면..? 자퇴하고 싶어 지면....?!?!?! 부모님이 원망하시면, 아이의 인생이 망가지면, 한 가정이...?!?!?!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처럼 망상이 달려 나간다. 이쯤 하도록 하자. 멈추자. 오바육바 그만 가자. 워-워.     

 이번엔 방향을 바꿔 다른 상상을 시작한다. 아이들이랑 뭐 할까. 친해지길 바래 짝꿍 바꾸기 게임은 2학년이라 필요 없을까, 세계사 시간에 조리실 빌려 전통 음식 해 먹어 봐야지, 서아시아 전통놀이도 해볼까, 인도사 할 때는 체육관 빌려 요가도 해봐야지, 애들이 싫어하겠지..?! 영화로 연표 만들기도 재밌겠다..     

 걱정이 두려움으로 가는 것도 순식간이었지만, 두려움이 다시 기대로 바뀌는 것도 금방이었다. 걱정되고 두렵기도 하지만, 기대된다. 즐거운 반, 행복한 수업을 만들어 가고 싶다. 하나씩, 하나씩 찬찬히, 완벽하게 준비해서 최고로 뽑아내려는 욕심은 살짝 버리고 상호작용 하면서 티키타카에서 즐거움을 찾아야지. 아이들의 반응 면밀히 살피고 수정하고 반영하며 만들어 가야지 다짐해 본다. 어떤 아이들이 들어올까, 얼마나 즐겁고 아찔한! 추억이 만들어질까 기대하며 말이다. 


 내가 모두 통제하고 준비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아이들의 눈을 들여다보자 다짐한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잊지 말아야겠다. 나만큼이나 아이들도 잘하고 싶다는 것, 나에게도 소중한 1년이지만,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에겐 더없이 기대되고 값진 17세, 18세의 빛나는 시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일주일 후에 얼굴 보고 만나자, 얘들아. 

 우린 즐거울 거야,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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