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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 시어머니와 같이 사는

60대 며느리의 수발

by 빅토리아

fact와 진실과의 괴리는 아주 크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믿고 전달하는 것은 한 눈을 감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60대와 30대 두 며느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30년의 간극은 강산이 3번 바뀌는 큰 변혁을 가져올 만한 세월이다. 그 간극에 나는 깜짝 놀라고 있다.


" 결혼할 때부터 시부모님이랑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지금 시어머니 연세가 90세인데 기저귀를 차고 계셔요. 한 4년쯤 되셨는데.... 늘 저한테 미안하다고 하세요. 사실 요양시설로 옮기고 싶은 마음은 살 짝 있지만 지금까지 같이 살았고 좋으신 분이라 가실 때까지 같이 살아야죠 뭐..."

C여사는 2년 전에 퇴직한 여교사라 여전히 뭔가 배우고 은퇴 이후의 삶을 위해 귀촌교육을 받고 있고 나 또한 관심 있는 분야라 교육을 받는 5일간 한 방에서 동침한 사이다. 그동안에 풀어놓은 그녀의 수발기.


" 시아버지는 평생 시어머니를 무시하고 고함치고 제멋대로 사신 분인데 이상하게 남편인 아들이랑 시어머니는 아무 내색을 안 하고 사시더라고요. 내가 보기엔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계속되더라고요. 나도 그땐 이상했지만 적응하며 살았어요. 시어머니께서 맞벌이부부인 아들내외와 같이 사시면서 정말 살림도 다하시고 손자들도 다 정성껏 키워주시고... 정말 선한 분이셨어요."


" 아들이 5살 때쯤 저녁식사 도중에 야단치고 고함치시길래 제가 처음으로 시아버지에게 대들었죠. 아주 강하게 그러시면 안 된다고요... 시아버지는 완전 열받으셔서 쓰러지셨어요. 얌전했던 며느리가 대들었으니... 한참 후에 고혈압이 터졌는지 응급실에도 실려가고 했는데 이후에 반신불구가 되시면서 시어머니께서 그 수발을 다 드셨답니다. 참 힘드셨는데 혼자 다 하시더라고요. 기저귀 수발하며 목욕하며 그래도 아들내외에겐 힘든 기색을 별로 안 하시던 분이셨답니다. 그렇게 기고만장하셨던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 시어머니께 말을 부드럽게 하셨고요. 도대체 왜 남자들은 자기 부인에게 그렇게 막 대하는지 난 이해가 안 됐어요. 오랫동안 그런 분위기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우리 남편도 아버지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침묵으로 살아가고 있었더라고요."


" 하루는 10살인 아들한테 전화가 왔어요. 엄마~ 할아버지 똥 쌌어 냄새가 많이 나. 하는데 아마 시아버지가 화장실 가다가 그냥 바지에 똥을 지리셨나 봐요. 시어머님은 외출 중이셨고요. 내가 아들한테 할아버지 옷 벗겨 씻어드리고 바지는 베란다에 두라고 시겼어요. 다행히 회식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 보니 기특하게도 10살짜리 손자가 할아버지를 잘 씻겨 놓긴 했는데 베란다에 똥 묻은 바지를 그대로 던져 집안에 똥냄새가 가득했다고 먼저 귀가하신 시어머님이 알려주시더라고요. 이러나저러나 시어머님은 마지막까지 시아버지를 잘 거두셨고요 10살인 아들도 그나마 태어날 때부터 같이 살아온 할아버지인지라 치다꺼리를 했더라고요"


" 우리 친정아버지는 부산분이신데도 어머니한테 그렇게 하대도 하지 않으셨고 자식들에게 잘 대해주셔서 시댁의 그 고압적인 시아버님 태도에 정말 이해가 안 됐지만 그 힘듦을 시어머니께서 다 감당하고 사셨으니 정말 대단한 분이시죠. 직장 며느리인 나한테 정말 싫은 소리도 안 하신 분이시죠. 사실 나도 퇴근 후 편히 발 뻗고 쉬지는 못하는 약간의 불편함은 있었지만 육아와 살림은 안 했으니 시부모님은 모시고 살았다기보다는 가족으로 살았다고 생각해요."


" 4년 전부터 시어머님은 기저귀를 차셨어요. 약간의 인지장애는 있지만 35년 동안 한가족으로 살림을 도맡아 하셨고 지금도 늘 며느리인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루에도 서너 번은 말하셔요. 작년엔 퇴직한 남편과 귀촌교육을 1주일 숙식하며 받아야 되는데 잠시 손위 시누이집에 가시랬더니 노발대발하시면서 절대 안 가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화내시는 모습은 처음이었거든요. 그래서 시누님과 전화통화를 해 뭔가의 오해를 풀고 간신히 1주일 딸네에서 지내셨죠."


" 아마 시어머님은 우리가 당신을 요양원으로 보내려고 속이는 것으로 오해하셨나 봐요. 주위분들이 다들 그렇게 속임을 당하여 아들네에서 나오면 다들 다시는 아들네와 살 수 없다는 얘기를 들으셨지 않았을까요? 암튼 나도 퇴직 후 남편과 해외여행이라도 가고 싶은데 시어머님이 불안해하셔서 지금까지 한 번도 못 가고 있는데 그게 좀 아쉬워요."


" 시어머님은 우리 가족이랍니다. 결혼 후 평생을 같이 살아왔으니까요. 그냥 요즘 젊은 애들이 시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단물만 빼먹고 버리는 껌 같은 존재라고 여기지 않아요. 그분이 우리를 위해 보낸 시간들이 얼만데요... 그래도 은퇴 이후 자유로운 시간을 갖고 싶은데. 이 여름에 또 큰 시누이 가족 8명이 다녀가겠다네요. 내년일지 그 이후일지 시어머님 가시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겠다는데 하룻밤 자고 가시겠다니... 휴우... 그 치다꺼리하기가 겁나네요. 이제 나도 체력이 달려요."


세상에 나와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부모형제, 친가, 외가, 사회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 어느 하나 노력하지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누군가가 나에게, 혹은 나와 깊이 연관된 가족에게 자신의 시간과 정성으로 대해줬다면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경기도 이천 어느 시골마을 무더위 속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잠시 짬이 난 시간에 나는 C여사에게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샀다. 인정 있는 며느리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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