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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First penguin 이 되다

피나 바우쉬의 <카네이션>

by 빅토리아

무용가 피나 바우쉬를 알게 된 계기는 아주 오래전 2003년에 개봉된 스페인영화? < 그녀에게 >의 무용장면에서이다. 군무의 움직임이 고전적 동작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주 감동적 이어서다. 언젠가 피나 파위쉬가 내한하면 꼭 가보리라 생각했다.


지난 11월 우연히 신문의 문화면에서 공연소식을 읽고 티켓예매를 시도했으나 매진이었고 세종시 예술의 전당은 예매가능했으나 시간적으로 힘들었다. 다행히 공연전날 당근에서 초대권을 구매해 딸애와 함께 마곡 LG아트센터에서 공연을 보았다. 역삼동에서 마곡으로 이전 후 처음 가보는 공연장이라 무척 궁금했는데 음.... 역시 건물만으로도 충분히 갈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건물 내 식당도 만족스러웠다.


<카네이션>이 무대 위 바닥을 꽂혀있다. 생화? 이겠지만 향기가 느껴지진 않았다. 이 무용극은 내가 기대했던, 고인이 된 피나 바우쉬만의 몸짓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정신세계를 일종의 판토마임극으로 표현하지 않았나 하는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다. 참? 판토마임이라고는 할 수 없네. 소리도 지르고 음악도 나오고 했으나 무용적인 요소는 거의 배제된 무대였다고 여겨진다.


<부퍼탈 탄츠테아터> 단원 대부분이 줄을 서서 보여주는 단순 손동작을 계속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한 단원이 관객들에게 일어서서 그 손동작을 같이 하게 권한다. 아마 대부분의 관객은 좌석에서 일어나 그 동작을 따라 함으로써 약간의 지루함도 해소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5분 정도쯤 소요되었고 무용수들은 그 동작을 마치고 무대 뒤로 들어간다.


그 후로.

다른 무대장면이 이어지고.

따라 할 수 있는 어떤 동작도 없었고

다른 단원에게서 그 어떤 요구나 안내도 없었다.

<카네이션>에서는 영어, 프랑스어 그리고 독일어로 번갈아 뭔가를 말하는 행위예술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 후로 여전히 서-서- 5분 이상 그 공연을 보고 있었다. 왜? 왜?

동작을 따라 하기 위해 서서 같이 했으면 누군가가 말하지 않더라도 착석해도 되지 않은가?

아무도 앉는 관객이 없었다.

앉아도 된다는 단원의 지시도 없었다.

지. 시. 가 없었다.

단원은 자기 역할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고.


나는 앉았다. 앉은 사람은 나. 뿐.이었다.

아무도 좌석에 앉지 않았다.

앉은 나는 무대를 볼 수 없었다.


도대체 이 현상은 뭘까?

일어서라는 지시? 에 일어서고 앉으라는 지시? 가 없어 계속 서서 공연을 보는 우리나라 관객의 자율성은 존중받아야 하는가?

나는 의문이다.

아직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다수를 따르는 군중심리를 파악하지 못한 나는 실패한 First penguin이었다.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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