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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Sep 11. 2023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1


‘적합한 표현(어휘)과 완결된 문장(문법)’을 쓰는 것이 글쓰기의 기초라고 여기고 있다. 이때 글쓰기의 목적은 ‘정보 전달’과 ‘소통’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글’을 통해서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서로의 생각을 제대로 아는 것. 소통의 시작일 것이다.


글쓰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다른 글을 많이 읽어서 표현을 풍부하게 하고 많이 써 봄으로써 비문을 줄여 문장의 완성도를 높인다면 적어도 ‘정보 전달을 통한 소통’, 즉 ‘의사소통’을 위한 글쓰기는 수월할 것이다.


글쓰기의 기초가 그렇듯이 ‘글 읽기’의 기초도 마찬가지라고 여긴다. 글을 읽고 이해하려면 글에 쓰인 표현들을 제대로 알고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에 대한 이해력을 높인다면 글쓴이와의 의사소통은 수월할 것이다.



2


글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글쓰기와 글 읽기의 기초가 그 간극을 메워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의 내용을 이루는 입장의 차이에 따른 간극은 소통을 어렵게 한다. 글의 문법이 아니라 마음의 문법이 중요해진다.


글쓴이의 마음까지 헤아리며 글을 읽겠다는 독자의 마음가짐은 마음 문법의 기초라고 여긴다. 글쓴이의 마음 읽기 역시 읽는 사람 마음대로여서는 힘든 일이다. 오히려 더 글 읽기의 기초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낱말과 낱말, 문장과 문장 사이를 면밀히 살피는 행간 읽기와 맥락 읽기가 충실성을 더해 줄 것이다.        


적극적으로 해석도 해야 할 것이다.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글을 읽는 묘미가 생기기도 한다. 글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함께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소통을 위한 글에서 소통을 하며 함께 쓰는 글이 되어 가는 것이다.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생각들이 탄생할 수도 있다. 물론, 상대의 마음까지 헤아리며 읽고 해석할 때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다.



3


흔히 글을 쓰는 사람은 ‘특수’를 ‘일반’화 해서는 안 된다는, 글을 읽는 사람은 ‘곡해’해서는 안 된다는 주의를 받는다. ‘일반화’는 ‘오류’, ‘곡해’는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오류’나 ‘잘못’이라는 판단은 누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올바른 해석이 무엇인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곡해인지 아닌지, 일반화인지 아닌지 누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곡해’ 라거나 ‘일반화의 오류’라는 판단도 하나의 해석인 것이다. 그렇게 해석하며 마치 자신의 해석이 올바른 것처럼 곡해하거나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곡해나 일반화’를 주의해야 하지만 곡해라거나 일반화라는 판단 자체도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곡해나 일반화’ 일지도 모르는 해석을 마치 진실인 양 퍼트리고 믿게 만들려는 권력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때로는 읽고 해석할 때 송곳 같은 독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4


글쓰기와 글 읽기의 기초는 소통을 수월하게 해 주어서 억지와 불통과 불신을 낳지 않게 해 줄 것이다. 그들 탄탄한 기초가 만나면 비로소 소통과 교감을 넘어 감동과 비판과 성찰과 상상을 넘어 사고와 시야의 확장을 가져다줄 것이다. 기초는 중요해서 어렵다.          



2021.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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