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에 대해서 좀 더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서 1차적으로는 3.1 운동과 연결해서 이 전투의 의미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점이 하나 중요하고 그보다 더 넓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 후반부터 제국주의 침략이 시작되고 있었고 한국인들이 거기에 어떻게 대항하고 있었는가 하는 큰 흐름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1850년대 이후로 세계적으로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힘을 가진 몇몇 나라가 전 세계를 침략하는 사태입니다. 힘을 가진 몇몇 나라, 이 제국이 꼽아보면 사실 몇 나라가 되지 않아요.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네덜란드 몇 개 안 됩니다.
그리고 일본이 마지막 자리를 차지한다고 보이는데 이 제국주의의 침략의 결과 1914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전 세계 육지 총면적의 56%가 식민지가 됩니다. 세계 총인구의 34.3% 약 5억 7천만 명이 식민지의 상태에서 살게 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중국처럼 식민지가 되지는 않았지만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태가 된 지역까지 포함하면 지구 총면적의 66.8%가 해당하고 전 세계 인구 56.1% 9억 3천만 명이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태에 살고 있었다는 것이죠.
우리도 이 56%의 일부고 5억 7천만 명 중에 일부가 됐던 것입니다. 그런데 식민지가 된 여러 나라들 가운데 가장 치열하게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독립운동을 한 것이 바로 우리입니다.
여러 가지 특수한 이유가 있지만 1894년에 동학 농민 운동이 있었고 1895년부터 항일 의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910년 이후에 국외로 망명해서 계속 해외 독립군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해외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려고 했습니다.
독립운동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힘을 키우자 하는 거죠. 독립운동 기지 이것이 만주, 간도, 연해주 지역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지는데 만주와 간도 지역에 1910년에 20만 명 정도가 건너갑니다. 그 이후에도 매년 2만 명 정도가 넘어갑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만주의 삼원보, 간도, 용정의 명동촌 이런 곳들이 기지 역할을 하는 거죠.
연해주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연해주에 1925년에 25만 명 정도가 건너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블라디보스톡의 개척리 신한촌 이런 한국인 집단 마을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이 집단 마을에는 독립군 부대가 생기게 되죠. 이 밖에도 하와이나 미국의 네브라스카, 멕시코 이런 데서도 한국인들이 집단적으로 독립군을 만드는 일이 있었습니다.
다시 강조드리지만 우리만 식민지가 된 게 아니고 그 당시에 식민지가 되는 나라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중에 우리만큼 끈질기고 오랫동안 독립운동을 전개한 나라는 없었다 하는 점이죠.
제국과 식민국이 피부색이 같은 경우는 일본하고 우리밖에 없어요. 식민지가 되기 전에 그 제국을 알고 있던 경우도 우리밖에 없어요. 인도가 영국을 몰랐다고요. 근데 우리는 일본을 삼국 시대부터 알고 있었단 말이에요.
삼국시대부터 계속 우리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이 관계의 역전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거고 이게 하나고 두 번째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제일 잔인했어요. 영국이 인도를 수탈한 것도 있지만 그것도 참 나쁜 짓 많이 했지만 일본만큼은 아니었어요.
실제 피해가 컸다는 것도 있고 어떤 민족적인 자존감의 상처 이런 게 있었고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가장 이 식민 지배를 못 견뎌했죠. 왜냐하면 우리가 식민지 역사를 우리 문제로만 자꾸 생각을 해요. 이거는 세계사의 문제거든요. 식민지가 된 것도 세계사의 문제고 해방도 세계사의 변화 속에서 해방이 되는 건데 우리는 자꾸 그거를 한일 간의 문제로만 보려고 해요.
그러니까 일본만 나쁘다고 하지만 사실은 한국이 식민지가 된 거는 국제적인 합의에 따른 거예요. 청일 전쟁에서 청나라 탈락하고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 탈락했지만 그 과정에서 미국 영국 그리고 러시아가 일본의 한국 식민지를 인정을 해요.
그게 카스라-테프트 밀약, 영일동맹 그다음에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서 또 이런 협정이 맺어져요. 결국에는 국제적인 합의로 식민지가 된 거라는 사실을 놓치게 되면 계속 일본 탓만 하게 되는 거고 그 이후에 역사를 좀 전체적인 틀 속에서 알지 못하게 되죠.
2025.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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