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다 바쳐서

by 영진

독립을 하기 위해서는 독립군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군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아마 그 당시 사람들 누구나 다 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독립군을 기를 방법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죠. 몇몇 지역에서 대표적으로 독립군을 양성하는데 만주의 삼원보 같은 경우에 그곳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유명하죠.


우당 육 형제, 우당은 이회영 선생의 호입니다. 이회영 6형제 그리고 안동 유림이었던 이상용 선생 이런 분들이 재산을 전부 처분하고 건너가는데 우당 육 형제의 재산이 얼마쯤 됐을까. 소유하고 있었던 토지가 880만 제곱미터였다고 하는데 지금 여의도 면적이 290만 제곱킬로미터입니다. 여의도 면적의 2배가 넘는 토지를 팔아서 이걸 가지고 건너간 거예요.


이 재산을 전부 독립운동을 하는 데 쓴 건데 이 가운데 둘째 이서경이라고 하는 분은 중국 상하이에서 굶어서 죽었습니다. 그 재산을 전부 소진하고 자기 몸까지 바친 거죠. 육 형제 가운데 단 한 분만 해방을 보고 나머지는 모두 그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독립운동을 한다 이런 분들이 굉장히 많았던 거예요. 만주 삼원보에 신흥강습소라고 하는 간판을 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신흥무관학교라고 하는 독립군 사관학교가 만들어집니다. 여기에서 독립군 2,100명을 배출하고 1920년에 폐교가 됐는데요.


여기서 배출된 장교들이 독립군 부대에 합류하게 됩니다. 사관연성소라고 하는 곳도 만들어지는데 이곳은 1920년 길림성의 왕청현에서 설립이 됩니다. 이 학교의 교장이 김좌진 그리고 교관 가운데 이범석이 있었어요.


1920년 9월에 첫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모두 298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람들이 청산리 전투에 바로 참여하게 됩니다.



-이익주, '봉오동,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 장군', <이익주는 역사> 중에서(*아래 영상 참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들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투쟁을 했던 이들의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처음 접하는 사실도 아니고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새삼 그들의 삶과 투쟁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물음을 갖게 되는 것은 왜일지,


그 이유가 무엇이든 삶, 투쟁, 전쟁, 공존과 같은 언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2025. 8. 25.




*돌아온 독립 영웅! 봉오동,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 장군 - 그의 일대기를 모두 파헤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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