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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_책을 덮고 삶을 열다

by 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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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러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

내 심장은 ‘그러나 아름다운’ 이야기들에 반응한다.

한 인간으로서 고통받을 수 있다, 외로울 수 있다,

평생 헤어 나오지 못하는 슬픔이 있을 수 있다,

이해받지 못할 수 있다, 두려울 수 있다,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모욕과 수치를 당할 수 있다,

뜻대로 되는 것이 거의 없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실패하지 않았다.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을.

[정혜윤, 책을 덮고 삶을 열다,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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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늘 이야기와 연결시킨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아는 것은 내가 무엇에 영향을 받는지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름다운’은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린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에

건드려지는 부분을 ‘존재의 핵심’이라고 부른다.

이 존재의 핵심에 있는 것이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만든다.

마음이 운명과 관계를 맺게 만든다.

‘그러나 아름다운’은 나를 변하게 할 힘이 있다.

나를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변신시킨다.

나는 슬픈 사람의 아름다운 자아를 사랑한다.

아무리 가슴 아픈 일이 생겨도 아름다움은 여전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정혜윤, 책을 덮고 삶을 열다, 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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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는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이야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야기하는 방식이 바뀌면 삶도 바뀐다.

‘삶은 삶에 관련된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삶은 삶에 대한 이야기다’,

‘삶에 관한 이야기가 없다면 삶도 없다’,

이것은 내 생각이면서 또 많은 작가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이야기하는 동물로서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의 이야기를 찾는 것,

우리의 이야기를 남이 대신하게 하지 않는 것,

우리의 가장 멋진 점을 이야기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정혜윤, 책을 덮고 삶을 열다,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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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내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책을 읽고, 형형색색의 밑줄을 긋고,

페이지를 접어놓고, 메모를 달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노트에 옮겨 적는 행동은 감동 이상의 중요한 점이 있다.

뭘까? 밑줄, 접어놓은 페이지, 옮겨 적은 글귀들은

우리의 정신 상태를 알게 한다. 밑줄 친 문장들은

각자의 마음이 필요로 했던 바로 그 말들이다.

모든 페이지마다 감탄하고 사랑을 느끼고 뭔가를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독자 자신의 마음이다.

책의 아름다움은 책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독자로부터도 나온다. “어느 여름 저녁 세상 시름을 잊은 채

강둑 너머를 내려다보는 이의 눈을 통해 강을 바라본다. […]

이 사람을 찾으러 가자(이내 명백해지는 것은

이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정혜윤, 책을 덮고 삶을 열다,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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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 앞날이 두려운 사람이,

상실감에 젖어 있는 사람이, 낙담한 사람이,

어두운 예감에 사로잡힌 사람이 문장 안에 있는

힘을 발견하고 문장을 붉은 실 삼아 가슴의 상처를

꿰매려고 할 때, 문장을 유일한 친구 삼아

스스로 다짐을 할 때, 이렇게 문장을 삶으로

옮기려고 할 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존 버거의 표현을 빌리면 “다른 사람이 뭔가를

먹고 있는 모습을 굶주린 사람이 볼 때 이야기가

거기서 끝나지 않는” 것처럼. 나는 이 과정에

내 나름대로 이름을 붙였다. ‘이야기 이어 붙이기’.

독자는 자신이 이어 붙인 이야기를 닮는다.

독자는 자신이 누구였는지가 아니라 누구이고 싶은지 알 수 있다.

[정혜윤, 책을 덮고 삶을 열다, 174-175]



2025.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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