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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Sep 21. 2023

진리 내용

아도르노에 따르면 사회로부터의 자립을 의미하는 예술의 자율성은 “그 나름으로 또한 사회 구조와 연루된 시민적 자유의식의 기능”이었다. 사회구조와 연루되어 있다고 밝히면서도 아도르노는 예술이 “사회에 대한 사회적 안티테제이며 사회로부터 직접 연역할 수 있는 것이 아니”(ÄT, 22)라고 주장한다.      


예술이 “사회를 향해 겨누는 창끝”(ÄT, 62) 또한 그 나름으로는 사회적이며, “기존 사회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작품의 진리는 사회의 운동법칙과 동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의 운동 법칙과는 반대되는 독자적인 법칙을 지닌다.”(ÄT, 279) 아도르노의 진술들은 예술이 그 자체로 사회적 사실이면서도 동시에 자율성을 지닌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이미 문학과 예술이 ‘사회구조와 연루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현실의 일부라고 한다면 현실의 충실한 형상화는 예술 작품과 현실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를 띌 필요가 없어 보인다. 작품 자체에 사회 혹은 역사적 현실이 담겨 있음에 주목하고 이를 읽어내려는 아도르노의 “단자론적 예술론”에 따르면 현대의 ‘진정한 예술작품들’은 철저한 형상화 내지 자체의 일관성을 통해 보편성을 얻는다.      


생산자는 재료에 전념함으로써 극단적인 개별화 속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것에 이른다. 개인적인 자아가 작품을 통해 그와 같이 객관화를 이룩할 수 있는 것은 자아 속에 있는 집합적 본질 때문이다. 그러한 본질이 작품의 언어적 성격을 구성한다. 예술작품에서의 노동은 개인을 통하여 사회적인 것으로 된다. 그렇다고 이때 개인이 사회를 의식해야만 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의식하지 않을수록 더 사회적일 것이다.(ÄT, 264-265)     

아도르노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문학에 대한 양자택일적 비유(문학은 이데올로기이거나 유토피아라는 명제)의 딜레마를 ‘변증법적인’ 요구를 통해서 벗어나려는 시도이다. “허위의식과 참된 의식이 함께 들어 있는 것으로서 평가하라”(ÄT, 239)는 것이다. 그러한 요구에 의하면 문학은 현실의 본질을 보지 못하도록 눈가림하는 거짓투성이의 가상임과 동시에 또한 이러한 사태에 대한 항의의 표시이다.      


변증법적으로 논증하는 아도르노의 이데올로기 비판이 지닌 특징은 “온통 이데올로기로 충만한 텍스트로부터도 역시 비판적인 유토피아적 진리내용을 밝혀내려는” 작업에서 발견될 수 있다. 이는 그 텍스트들을 모조리 나쁜 것으로 매도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구제비평”을 통해서 그것이 지닌 좋은 점을 가려내어 보존하는 작업이 된다.      


아도르노의 이데올로기 비판은 예술작품의 내용만을 평가함으로써 예술작품 특유의 미적 조직을 놓치지 않는다. 그의 이데올로기 비판은 미적인 현상들을 고려한다. 고전주의 미학이 요청하는 예술작품의 조화성과 완결성의 이상에 대한 그의 부정적 반응이 그것이다.      


예술작품의 완결성이라는 이상 속에서는 서로 다른 이름의 것들이 혼합되어 있다. 이것들은 항시 부서질 수 있는 이미지로서의 화해의 유토피아와 그리고 객관적으로 약화된 주체의 타율적 질서에 대한 동경, 즉 ‘독일이데올로기’의 본질을 두고 하는 말이다.(ÄT, 239)      


다시 말해, 사회현실의 ‘무질서적’ 부조화로 인해 약화된 주체는 타 주체들에 의해 제공되는 질서에 기꺼이 투항할 준비가 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완결적 예술작품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이 준비 자세를 자신이 제공하는 질서를 통해서 더욱 부추길 수 있는 것이다.”           


*단자론적 예술론. “라이프니츠의 공식을 써먹자면 예술작품은 사회적 과정을 창문 없이도 대변한다. 작품 전체에 대한 각 요소들의 짜임 관계는 외부 사회의 법칙과 유사한 법칙에 내재적으로 따른다. 사회적 생산력과 생산관계는 사실적인 문제를 논외로 하고 단순한 형식으로 볼 때 예술 작품 속에도 다시 나타난다. 왜냐하면 예술적인 작업은 사회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언제나 또한 사회적 노동의 산물이기도 하다.”(ÄT, 365)           



2011. 12. 10.



Th. W. Adorno: Ästhetische Theorie, Surhkamp Frankfurt/M., 1970, 이 책에 대한 인용은 ‘ÄT, 쪽수’로 표기/ 테오도어 W. 아도르노, <미학이론>, 홍승용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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