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한 빛을 지켜주는

by 영진

사람을, 강하다 약하다 따듯하다 차갑다와 같은 기준으로 나눈다는 것이 이상해 보이지만 그런 기준에 따른다면 나는 강하지도 약하지도 따듯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강함과 약함, 따듯함과 차가움 사이에는 밤하늘의 별들만큼이나 무수한 강도의 강함과 약함, 따듯함과 차가움의 온도가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강도와 온도가 그 나름의 고유한 존재 이유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강함, 약함, 따듯함, 차가움인지 구체적인 상황에 따른 그들의 구체적인 성격에 따라 구체적인 언어로 이야기될 때 어느 정도 강도와 온도의 사람인지 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단순 분류에 따라 나의 고유한 강함, 약함, 따듯함, 차가움이 빛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세상을, 사람을 좀 더 복잡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본디 복잡하고 다채로운 사람과 자연의 고유한 빛을 지켜주는 일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워렌 버핏과 같은 기부 천사는 따듯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하루 벌어 먹고 살기도 힘들어 기부라는 말조차 낯설어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차갑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웃에게 건네는 따듯한 말 한디의 온도가 수억을 기부하는 천사의 그것보다 낮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식의 온도 측정 자체가 무의미할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말했다고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아우슈비츠와 같은 야만 상태를 만들 만큼 강하지는 않다. 노동력이 없다고, 장애가 있다고, 종교가, 성적 지향이 다르다고 살해할 만큼 평범한 사람들은 강하지 않다. 하지만 때론 그런 강함을 약하게 만들 수 있을 만큼 무수한 약함은 강하기도 하다.


나는 사람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판단한다. 간혹 두드러지게 강하거나 약하거나 차갑거나 따듯하거나 한 사람이 있겠지만 말이다. 강함과 약함, 차가움과 따듯함은 혼재되어 있고 늘 어떤 쪽에 더 가까울 상황은 발생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지향하는 쪽으로 좀 더 가까워지지 않는가 싶은 것이다.



2025.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