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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잉여(surplus)는 남는 장사, 이익을 의미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이 잉여가 되었다.
없어도 되는 사람(useless). 전 세계적으로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같은 대안을 절박하게 찾고 있다.
노동 운동은 정규직을 외치고 있다.
나는 두 세력 모두에게 좌절한다. 자본의 의지와
무관하게 시스템은 정규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규직 개념부터 바꿔야 한다. ‘재벌부터 노숙인 까지’
전 인구가 하루에 네 시간만 일하며 정규직인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24시간 일하는
글로벌 비즈니스맨을 제외한 절대 다수는
‘100세 시대’에 30대부터 잉여로 살아야 할 판이다.
아니, 이미 그런 시대다. 캥거루에게 미안할
지경이다. ‘캥거루족’은 그나마 중산층 부모를 둔
잉여들이다.[정희진, 낯선 시선,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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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인간이 잉여이거나 잉여 직전인 사회에서,
우리는 잉여의 공포에 떨면서도 먼저 잉여가 된
이들에게 안도감과 경멸을 느낀다. 심지어 오로지
잉여를 제거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비극도 있다.
남아시아의 몇몇 부족들은 식량 부족과 인구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인위적 전쟁으로 인구를
‘조절’한다. 이렇게 보면, 저출산은 다행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인구를 국력으로 생각하는
국가주의, 남성 생식력 숭배 문화, 고령자에 대한
편견이 저출산을 문제로 만들었다.
[정희진, 낯선 시선,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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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사태는
인간이 원해서 인간이 만든 것이므로
변화 역시 인간의 의지로 가능하다. 새 역사
창조는 ‘세계로 뻗어 나가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이들을 존중하는
것이다. 국민이 잉여가 아닐 때는 선거 때?
‘댓글 아르바이트‘를 보면 그마저도
아닌 것 같다. [정희진, 낯선 시선,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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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불감증의 가장 큰 원인은 ‘먹고사는 게
전쟁’이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이 전투,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삶이다.
전쟁이 없어도 입시, 실업, 질병, 외로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살로 목숨을
‘빼앗기고’ 있다. 구타, 모욕, 불편, 고통이
일상인 여성과 장애인,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에겐 ‘지금, 여기’가 바로
전쟁터다. 사회적 약자의 일상이 아니더라도
어떤 이에겐 ‘북핵보다 엔화 약세가 더 심각’
하고 ‘전쟁보다 빚이 더 무섭다’.
[정희진, 낯선 시선,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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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은 전쟁 불감증 여부가 아니다. 불감이든
민감이든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의 본질은 위기의식과 경각심을 가져야 할
사안과 ‘가벼운’ 사안이 있다면 그것을 누가
정하는가이다. 국민들이 절실하게 느끼는 현안에
대한 집권 세력의 무감각, 이것이 진짜 전쟁,
즉 내부의 전쟁을 만들어낸다. 무감한 정도가
아니라 국민들의 절박함과 두려움을 부정하고
공권력을 행사할 때 전쟁이 시작된다. 한국은
고위 공직자 비리에 둔감한 정도가 아니라
너그러운 사회다. 표절, 병역 비리, 탈세,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학력 위조 따위가
‘종합 세트’가 아니라 한두 건만 해당하면
‘청렴한 편’이라는 여론이 나온다.
[정희진, 낯선 시선,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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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간 전쟁 연습, 군사적 긴장 고조의
목적은 전쟁이 아니라 내부 통치 전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모르는 국민은 없다.
전쟁 불감증이 당연한 이유는 두 가지다.
승부도 출구도 없는 공멸의 현대전,
그리고 당장 일상의 삶이 ‘더’ 다급하기 때문이다.
[정희진, 낯선 시선, 56]
2025.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