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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Jan 10. 2024

책속에서_느낌의 0도

6

대안교육기관인 발도로프 학교를 세운 슈타이너는 경제의 근본원리는 절대로 자유가 아니라고 했다. 프랑스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가 훌륭하게 사회에 구현되려면 각 영역별로 각기 다른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민주주의라면 모두가 평등해야 하기에) 평등은 무엇보다 정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가 되어야 하고, (사고와 표현의 자유가 예술의 토대이기에) 자유는 문화와 정신의 영역에서, 그리고 (유한한 재화를 모두가 골고루 나눠야 하기에) 우애는 무엇보다 경제 영역에 필요한 원리라고 보았다.      


엔데 역시 경제의 원리는 자유시장이나 자유경쟁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우애, 즉 상호부조여야 한다고 보았다. 서로 돕고 나누는 우애의 경제학이어야만 자연도 파괴하지 않고, 약자도 착취하지 않을 수 있다.

(박혜영, <느낌의 0도>, 63쪽)          



7

살아 있는 삶이란 우리가 각자도생의 서바이벌 경쟁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아니라 이발사 피가로가 한때 그랬던 것처럼, 또 모모가 오랫동안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들길을 걷거나, 우두커니 먼 산을 바라보거나, 아니면 친구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그래서 현대문명을 비판한 이반 일리치(Ivan Illich)도 민중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바로 경제성장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웃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평화롭고도 행복한 시간을 되찾는 방법은 지금과는 다른 경제 원리를 상상해보는 데서 시작된다.      


엔데는 오직 우애의 원리만이 지금도 마법에 걸려 쉬지 않고 물을 길으러 오는 저 욕망의 빗자루를 멈추게 할 유일한 주문이라는 이야기를 거듭 들려준다.

(박혜영, <느낌의 0도>, 64쪽)          



8

지금의 경제학은 전 지구적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성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가난을 해결하는 방법은 대량 생산이 아니라 대중에 의한 생산이다”라고 말한 간디와 마찬가지로 슈마허 역시 빈곤 문제가 대량 생산과 물질적 팽창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난은 작은 풍요로도 충분히 극복될 수 있고, 그 정도의 풍요는 지금까지 인류가 축적한 것으로도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한 분배가 어려운 것은 생산은 경제적 문제이지만 분배는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빈부 격차, 지역적 불평등, 국제적 불균형, 자원 고갈, 환경 오염 등은 모두 높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 움직임을 통해서만 해결 가능한 문제들이다. 물론 정치적 행동은 사람살이에 대한 도덕적 각성에서 시작된다.      


슈마허는 버마에서의 경험을 통해 경제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진짜 중요한 문제는 물질이 아니라 바로 사람이고, 경제의 본래 사명은 물질적 번영이 아니라 삶의 평화와 영혼의 안식을 북돋아 주는 데 있음을 깨달았다.      

최소한의 자원을 이용하여 꼭 필요한 재화만 생산하는 버마 경제와 악화일로의 환경 오염에도 불구하고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의 악순환 속에서 내다 버릴 만큼 재화를 생산하는 서구 경제 가운데 과연 어느 쪽이 진정 지혜로운 문명일까?

(박혜영, <느낌의 0도> 77쪽)  



2024. 1. 10.



19화 책속에서_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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