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아레키파'에서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말 중에 ‘수량화’라는 것이 있다. 모든 것을 숫자로 환산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현대사회 중에서도 자본권력중심사회에서 그 수량화 경향은 더욱 심하다. 그런 경향은 현대인들에게 모든 것을 숫자로 계산하게 만든다.
나의 아이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보다 몇 점을 받아서 몇 등을 했는지가 더 궁금하고 나의 연인이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지보다 한 달에 얼마를 벌며, 차는 얼마짜리를 타고 다니며, 집안에 재산은 얼마나 있는지, 심지어 키는 얼마인지를 더 궁금하게 만든다.
모든 것을 숫자로 계산하는 삶은 우리의 삶을 성과주의적인 삶으로 내몬다. 숫자로 계산이 되지 않는, 계산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치들, 사랑, 아름다움, 자연마저도 얼마나 높은 숫자(가격)를 지니는지, 얼마나 높은 성과(이윤)를 산출하는지가 그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갈지보다 몇 등을 하는지, 얼마를 버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높은 숫자를 지니지 못하는 것들, 상위에 속하지 못하는 것들, 일정한 돈을 벌지 못하는 이들은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
쓸모없는 존재라는 말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그 어떤 존재가 쓸모없단 말인가? 자본권력중심사회에서 돈 못 버는 존재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집 밖으로, 심지어 세상 밖으로 내몰린다. 그 무엇보다 자본권력중심사회는 이 어이없는 일들이 어쩔 수 없는 당연한 현실인 듯 받아들이고 살아가도록 만든다.
성과주의라는 것이 여행에도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얼마의 돈을 가지고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는가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성과를 냈는지가 여행의 목적일 수 있을까? 여행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밖에 없다. 사랑의 목적이 그러하고 삶(존재)의 목적이 그러하듯.
단지 어떻게 여행을, 사랑을, 삶을 즐겁게, 아름답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을 뿐.
2013. 1. 24.
페루 아레키파에서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쿠스코로 가는 길에 들렀던 아레키파는 콘돌을 볼 수 있는 깊은 협곡의 꼴까 캐년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 때문에 간 것은 아니었고 여행 중에 만났던 분이 이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방문했다. 다른 무엇보다 어행 중의 신라면과 초코파이 선물은 행복 그 자체였다.
위의 글은 10여 년 전에 쓴 글이고 ‘수량화’, ‘계산가능성’, '상품화'의 경향은 더 심해지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오히려 그래서인지 그 심각성에 대한 감각은 무뎌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 자체로 목적이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감각과 욕구는 더욱 소중히 지켜가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