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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Jun 06. 2024

자율적인 사람들

‘자율적’이라는 말에는 ‘스스로 알아서 행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칸트의 윤리학에서 ‘실천 이성’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기도 합니다. 한데, 중요해 보이는 것은 자율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자율’의 ‘성격’입니다. ‘무엇’을 스스로 알아서 행하는가.      


‘자율적으로’ 타인의 자율을 억압하거나 타인의 권리나 이익을 침해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칸트적 의미의 자율적인 ‘실천 이성’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것입니다. 인간 이성 자신의 존재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살 때 자율적이라는 것입니다.     


인간 이성의 존재 목적이 무엇이든 자신의 자율을 위해서 타인의 자율을 억압하지 않는 ‘민주적 이성’.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서 타인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평등한 이성’을 스스로 알아서 행하는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보입니다.       


인간이라면 이미 누구나 자율적인 실천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와 같은 본성을 가진 것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율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율적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존재 목적이라고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타인의 자율을 억압하는 인간 이성은 자율적이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자율도 타인의 억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율적으로 타인의 자율을 억압하지 않는 삶을 살 때 서로가 자율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겠습니다.     


타인의 자율을 억압하지 못하도록 요청하면서 스스로 타인의 자율을 억압하지 않는 인간 이성이 되는 것이 자율적인 인간 이성이라는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겠습니다. 그것이 각자 알아서 스스로 자신의 존재 목적을 실현하면서,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자율적 존재로 살아가는 길이겠습니다,     


자율적인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자율을 살아낸 사람들일 것입니다. 청년, 중년, 노년 중에도 있고, 노동자,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중에도 있습니다. 저는 그들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자율적인 사람들’에게서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의 가능성을 봅니다.       



2024.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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