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에는 주인공인 변호사가 ‘사람’을 변호하는 장면이 나온다. 개봉(2013)한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영화가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송우석 변호사(송강호)가 법정에서 ‘사람’을 변호하면서 증인 차동영 형사(곽도원)를 심문하는 장면이다.
변호사가 증인에게 묻는다. ‘사람’이 법을 어겼다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입니까. 증인이 답한다. 국가가 판단합니다. 변호사가 묻는다. 국가란 무엇입니까. 증인이 답한다. 변호사란 사람이 국가가 뭔지 몰라? 변호사가 답한다. 잘 알지요.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이다.
변호인이 변호하려던 ‘사람’이 구속된 이유는 그 사람이 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변호인이 증인에게 ‘사람’이 법을 어겼다고 여기는 근거를 묻자 증인은 법조항이 아니라 ‘국가’라고 답한다. 그가 법조항을 잘 모르고 있었거나 변호인을 무시하려 했거나 국가가 곧 법이라고 여기고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증인에 따르면 ‘사람’이 어긴 것은 법이 아니라 국가인 것이다. 증인에게 법은 국가인 것이다. ‘사람’이 어긴 법은 ‘국가보안법’이었다. 그런데 증인에 따르면 국가보안법은 국가를 지키기 위한 법이니 ‘사람’이 어긴 것은 국가를 어긴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증인의 국가관이 그런 것일 수 있다.
변호인의 국가관은 국가는 곧 국민이라는 것이었다. 변호인에 따르면 국가보안법이 지키려는 것이 설사 국가라고 하더라도 국가는 국민이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은 국민을 지켜야 국가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를 지키겠다고 국민을 지키지 못한다면 국가보안법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변호인의 입장이다. 그에게 국가란 국민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문제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보안법은 ‘권력의 통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문제 때문에 법이 만들어진 이래 국내와 국제사회에서 개정이나 폐지가 권고되어왔다. 2015년에도 유엔 자유권위원회에서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 고무죄 조항에 근거한 기소가 계속되고 있음에 우려를 표하면서 이 조항의 폐지를 권고했다고 한다.
국민이 어쩌다 갑자기 범죄자가 될 수도 있는 이 법이 개정이나 폐지되지 않고 있는 이유 또한 ’권력이 통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이 자신을 대의代議하라고 권력을 쥐어 준 ’정치권력‘이 여전히 국민들을 통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장 개정이나 폐지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영화 속 변호인은 국가보안을 이유로 ‘국민’을 위협하는 ‘법’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려 했다. 국가가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을 보호하고 안전을 지켜주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다. 국민의 안전을 보호 해주기위해서라면 국가보안법은 필요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보호해줄 수 있는 법이라는 의미에서만 그렇다.
한국의 정치권력은 국민을 위협하는 국가보안법은 폐지하지 않으면서 혹은 못하면서 정작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세력으로부터 국민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무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성주 소성리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침략하여 주민들의 일상적인 삶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야 할 대상은 한국 국민이 아니라 미국일 것이다. 그럼에도 수십 년 동안 한국의 정치권력이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지 못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일 것이다. 한국의 정치권력이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까. 결국 국가보안의 문제는 미국과 국민 중에 누구를 편들 것인가의 문제 아닌가. 미국을 편들어서 기득권을 유지할 것인가, 국민을 편들어서 기득권을 포기할 것인가. 이제껏 한국의 정치권력이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보안보다 미국을 편들었기 때문 아닌가.
국민들을 기만欺瞞하면서 합법적으로 미국을 편들어주고 기득권을 유지한 덕분에 한국의 정치가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미국의 우방友邦이 되어야 나라가 살고 국민이 산다.’ 그래서 미국의 방위비분담금도 부담해주고, 전시작전권도 미군에게 주고, 한국의 영토는 미국의 미군기지가 되어주고,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도 참전해주고, 미군의 범죄로 일상이 고통스럽더라도 참아주고. 그래서 한국의 정치권력은 안전하게 살기 좋은 나라가 된 것 같은데 왜 국민의 안전은 여전히 위협 받아야 하는 것일까.
한국의 정치권력이 말하는 ‘사람 사는 세상’의 ‘사람’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지, 설마 그들 정치권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또 다른 정치권력이 말하는 ‘소통과 통합’은 누구와 하겠다는 것인지. 설마 그들 또 다른 정치권력끼리만 하겠다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영화 속 변호인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요즘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이다.
2021.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