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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다른 삶

국가권력과 어소시에이션

by 영진

사이토 고헤이는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와 <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에서 ‘생산수단과 국가권력의 사유화’를 넘어선 ‘탈성장 코뮤니즘’을 구상하는데, 그 실현 방식은

‘생산수단의 사회적 공유’(커먼common)이며, 실현 주체는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이다.


그의 방식과 주체는 ‘생산수단과 국가권력의 사유화’, ‘개별 노동자들의 우연적인 노력’이라는 맑스의 문제 제기를 넘어서고 있는가/넘어설 수 있는가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이토 고헤이는 「국유화보다 어소시에이션이 선행했다」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소련에서는 국유화가 먼저 선행되었죠. 반대로 복지국가의 경우, 물상화의 힘을 억제하려는 사회운동이 선행되었습니다. 이 운동을 마르크스는 ‘어소시에이션’이라고 불렀습니다"


“노동조합, 협동조합, 노동자 정당, 모두 다 어소시에이션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NGO나 NPO도 해당됩니다. 마르크스가 지향한 것은 소련과 같은 관료 지배 사회가 아니라, 사람들의 자발적인 상호부조와 연대를 기초로 한 민주적 사회였습니다”(제로179)


하지만, 이미 ‘어소시에이션’이 처한 현실이 보여주듯, 현실은 복잡하게 얽히고 설힌 관계를 이루며, 시시각각 변하는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이 가변적인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국가와 무관한 어소시에이션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고, 국가의 지배를 받든, 국가에 대항하든 국가와의 ‘관계’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소시에이션이 국가 내에서 국가와 관계하면서 국가를 넘어서려 한다는 점에서 어소시에이션과 국가는 대립 속에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모순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소시에이션과 국가는 다르기 때문에 갈등의 여지를 지닐 수밖에 없는 관계인 것이다.


해서, 그 양자가 처한 현실은 모순적인 관계를 지양해가는 부단한 운동 속에 존재하는 ‘과정의 현실’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어소시에이션과 국가권력과의 관계에서도 ‘현재의 상태를 지양하는 운동’이라는 개념을 적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지 않는가라는 것이다.


-하영진, ‘인터내셔널의 현재성’, <조금은 다른 삶> 215-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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