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턴은 어떠한 경계도 인정하지 않으며 완전하고 절대적인 것을 추구함으로써 결국 파괴를 통해 “공허와 무”, “순수하고 맹목적인 부정 상태”에 이르게 되는 ‘나쁜’자유인 절대자유주의자의 예로 근본주의자, 허무주의자를 언급한다.
이글턴이 탈레반 출신이든 텍사스 출신이든 근본주의자와 허무주의자를 나쁜 자유주의자로 규정하는 이유는 그들이 “제1원칙에 근거하지 않은 것들을 거부하고 배제한다”(53)는 것이다. 즉, “예외를 인정하지 않기”(53) 때문에 파괴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근본주의자들에게는 “무질서와 절대 진리 양자만이 존재 한다”(53)는 것이다. 그들에게 질서가 아닌 것은 무질서일 뿐이며, “절대” 진리가 아닌 것은 진리가 아닌 것이다. 이글턴이 보기에 이들의 문제점은 “자신들 기준에 부족한 것은 무엇이든 무질서로 명명하는 자기만족적 명제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54)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만족적”이 아니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누구나 자신의 논리가 옳고 완전하다는 자기만족에 빠질 수 있다. 다만, 그것이 틀릴 수도 있다고 미리 말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틀릴 수도 있다는 반성적 인식이 없다면 절대주의적인 파괴범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글턴은 “무정부 상태와 절대주의는 동전의 앞 뒷면에 불과하다”(54)고 본다. “그들 모두는 암묵적으로 무질서를 본질적 조건으로 간주하는데, 단지 절대주의가 무질서를 두려워한다면, 무정부주의자들은 그 상태를 향유할 뿐”(54)이며, “본질적으 로 무질서한 세계가 결국 강력한 통치체제를 불러온다는 점에서 무정부주의는 다시 또 절대주의로 이어진다”(54)는 것이다.
결국 이글턴이 보기에 문제는 “거룩한 무질서의 찬양자들은 본질적으로 모종의 질서를 수용할 수 있는 세계만이 무작위한 폭력이상의 무엇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54)이다.
-하영진, '성스러운 테러', <조금만 다른 삶> 64=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