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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by 영진

“순수한 건 오염되기 쉽죠.” 재연의 말처럼 아직 오염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순수했던 이들은 오염되어 버렸다. 순수했기에 오염되기 쉬웠던 것이다. 지훈도 마찬가지다. 순수했기에 그 바닥에서 쫓겨나고 여자 친구로부터 버려졌다. 순수해서 상처받다 보면 살아남기 위해 순수를 버리게 된다. 지훈도 자신의 욕 망에 재연을 가둬버린다.


그도 유명 작가가 되어 살아남겠다는 욕망에 갇혀 순수한 재연을 이용했을 뿐 재연을 지켜주지 못했다. 뒤늦게 잘못했다고 다시 쓰겠다고 재연을 붙들고 울어보지만 이미 그녀의 순수는 오염되어 버렸다. 오염된 순수를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을 재연은 연구를 통해 보여주었지만 그것은 재연과 같은 순수를 지키려는 이들이 살아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나무들은 가지를 뻗을 때 서로 상처 주지 않으려고 다른 방향으로 자라나지만 사람은 안 그래요” 나무에서 태어난 재연은 다시 나무가 되었다. 재연처럼 순수하게 살다 나무가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나무처럼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영진, '나무처럼', <보라의 시간> 24-25쪽.




보라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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