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후보에게 투표한 이들이 반드시 그를 지지해서라기보다는 연금 문제 때문이거나 거대 양당의 대안처럼 느껴져서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은 이준석 의원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언제나 지나치게 당당하다(“의기가 방자하다”). 2030 남성이라는 ‘피해 집단’을 대변하고 자기만의 ‘합리성, 문명, 시민성’을 확신한다. ‘갈라치기’는 불필요한 갈등을 조직해 공론장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전도(顚倒)된 인식과 실천을 또 다른 사회적 약자를 통해 수행하게 만든다. 이 의원은 2030 남성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용한다.
기존의 정치는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보호한다는 가정 아래, 그 보호의 기준을 정하는 권력을 갖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모두가 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린이, 노인, 아픈 사람, 장애인의 몸은 이준석 의원이 피해집단이라고 말하는 2030 남성들과 다르다. 그러나 ‘병역의 의무로 피해자가 된 2030 남성’들도 언제든지 그리고 언젠가는 취약한 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삶의 원리가 인간이 서로를 돌봐야 할 이유, 인간의 조건이다.
-경향신문, 2025.6.10. 기사 <이준석 의원을 생각한다> 중에서
나는 이준석과 ‘이준석 정치’를 유심히 본다.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면서 성폭력 대응 정책과 법적 개선을 제안해온 활동가로서 더욱 그러하다. 정치인 이준석은 딥페이크 성폭력이 문제가 되었을 때 ‘위험이 과장되었다’고 했다. 딥페이크 텔레그램방 가입자 수를 셈하는 문제로 포커스를 이동시키고자 하는데 그 문제를 사소화하는 프레임에 힘을 싣는다. 피해자에게 저항하기 힘들 정도의 폭행과 협박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강간죄 개정에 대해서도 이준석은 단순한 말로 반문한다. 문제는 구체적인 피해 현장에 집중하고 정책을 도출하는 게 아니라, ‘진짜 맞냐, 가짜 아니냐?’ ‘A가 문제가 아니라 B가 문제 아니냐’고 문제를 바꿔치기하는 프레임워크다. 이준석 정치는 성폭력 문제를 현장의 고통이 아니라 성별 대결이나 갈라치기 이슈로 바꿔버린다.
20대 남성만 이준석에 투표한 것이 아니며, 이준석을 찍은 사람이 이준석인 것도 아니다. 주목하는 것은 이준석 정치다. 이번 대선에서 이준석 지지율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준석의 공약, 정치, 프레임워크에 동의하고 일부라도 설득된 이들, 적어도 다른 후보보다는 낫다고 본 이들, 기권이나 무효표보다 이준석을 찍는 게 필요하다고 선택한 이들의 생각이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준석 사퇴’라고 입장을 내걸었던 한국성폭력상담소 인스타그램 게시글에 댓글이 계속 달리고 있다.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로부터 좌표가 찍혔다고 한다. 댓글의 주요 내용은 생방송 토론회에서 이준석은 잘못이 없으며, 다른 후보 아들이 문제라는 주장이다. 이는 이준석 주장의 프레임을 반복하는 것이다. 성폭력의 정의와 법적 구성 요건, 정책 방향은 풍부한 논의와 토론이 필요하다. 그러나 피해를 방치하지 않고, 구경하거나 조롱하거나 이용하지 않고 피해와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반성폭력’ 원칙이며, 시민들의 합의선이길 바란다. 그리고 이준석 정치에 대해 다채롭게 토론하고 싶다. 이준석이 아닌 모든 시민과 이준석 정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한겨레신문, 2025.6.11. 기사 <이준석 정치와 반성폭력 원칙> 중에서
"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전도(顚倒)된 인식과 실천을 또 다른 사회적 약자를 통해 수행하게 만든다. 이 의원은 2030 남성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용한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모두가 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원리가 인간이 서로를 돌봐야 할 이유, 인간의 조건이다."
"이번 대선에서 이준석 지지율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준석의 공약, 정치, 프레임워크에 동의하고 일부라도 설득된 이들, 적어도 다른 후보보다는 낫다고 본 이들, 기권이나 무효표보다 이준석을 찍는 게 필요하다고 선택한 이들의 생각이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폭력의 정의와 법적 구성 요건, 정책 방향은 풍부한 논의와 토론이 필요하다. 그러나 피해를 방치하지 않고, 구경하거나 조롱하거나 이용하지 않고 피해와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 ‘반성폭력’ 원칙이며, 시민들의 합의선이길 바란다."
"그리고 이준석 정치에 대해 다채롭게 토론하고 싶다. 이준석이 아닌 모든 시민과 이준석 정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2025. 6. 11.
[정희진의 낯선 사이]이준석 의원을 생각한다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