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지만 반갑지 않은 우연

전 남자친구 마주친 썰

by 두밧두중독현상

에세이 수업이 끝나고 합정역에서 함께 수업을 들은

이와 전철에 탔다.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심코 앞을 봤는데 낯익은 인영이 보였다.


그 녀석이었다. 20대의 대부분을 함께 보낸.

이 시간에 같은 칸에서 만난 우연이 놀랍고 반가워서 반사적으로 인사를 했다.


옆에 앉은 이가 친구냐고 물어

전 남자친구라고 답하니 놀라는 듯하다.


나랑 만날 때는 늘 살쪄 있는 상태였는데 살 빼고 인물이 살았다.

반가우면서도 어쩐지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다.


어디 가냐고 물으니 친구를 만나러 간단다.

저번에 말한 그 여자애 만나러 가냐고 하니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이 시간에 손에 무언가를 들고 가는 모양새는 영락없이 여자를 만나러 가는 모습이다.

친구라고 말하는 건 20대를 함께 보낸 나에 대한 배려인 걸까


어쩐지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다.

입술이라도 바를걸

하필 오늘따라 화장을 안 했네.


그 녀석은 꽤나 오랜 시간 나에게 동생이자 오빠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고,

비록 지금은 같은 자리가 아니더라도 나는 그 녀석을 여전히 애틋하게 생각한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나온 것처럼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 녀석과 나의 유효기간은 지난 지 오래다.

꼭 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화장기 없는 모습으로, 비 맞아서 앞머리도 떡진 상태에서 전 남자친구를 마주하는 것은

어쩐지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다.


다음에 마주칠 때는 내가 좀 더 괜찮은 상태이길 바라는 건

여자 만나냐는 나의 물음에 굳이 친구라고 대답하는 그 녀석과 비슷한 마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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