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과 인정욕구로 가득 찼던 삶 속의 한마디 외침
하루는 상무님이 나를 방으로 불러서 한 매니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내 생각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너무 좋죠. 한마디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빨랫줄에 걸린 시래기처럼 아무런 의지 없이 그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일 인분도 못하는, 무능력한, 답답한, 쓸데없이 꼼꼼한.. 온갖 수식어가 등장했다. 난 이 이야기의 핵심이 단순 비난인지, 경고성 멘트인지 알 수 없었다. 여느 때와 같이 내가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만이 존재했다.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은 지금하고 있는 이야기가 재미있어 보인다. 정말 웃긴이야기를 할 때 볼 수 있는 웃음이 그 방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속이 울렁거렸다. 아아 저 사람은 이게 재미있나.
그리고 이 이야기에 끝에는 내가 있었다. 그래서 네가 잘 올라와주기를 바란다. 중간 직급은 안 뽑을 것이고, 그 매니저를 짓밟고 올라와 훌륭한 매니저가 되기를 원한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곳은 나와 정말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고 느꼈다.
난 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고 "저는 욕심이 없어서요.."라고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나는 돈도 직급도 강하게 열망하는 사람이 아니다. 처음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물론 돈이었지만, 그리고 그 요소가 나를 지금까지 버티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난 욕심이 없다.
근데 욕심이 없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나 보다. 이상한 사람을 보듯이 날 바라보며, "욕심이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상사는 욕심도 많고 능력도 좋은 사람이다. 처음에는 그게 참 믿음직스럽고 좋았었다. 사실 능력 있는 사람 밑에서 일하는 느낌은 나쁠 것 없다. 다만 나는 그런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가. 회사 생활 내내 나에게 던진 물음이었다.
욕심이 없는 나도 명품을 좋아한다. 심미적인 관점으로도 훌륭하고, 남들이 나를 보는 눈빛도 마음에 든다. 나는 평생을 그 눈빛의 노예가 되어 끌려다녔기에 돈으로 그 눈빛을 살 수 있다는 점을 좋아한다. 밤을 새우고 끼니를 걸러가며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결과가 아닌, 돈으로 살 수 있는 거라니. 너무 간단하고 좋지 않은가. 내가 명품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내가 남을 의식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아주 어렸을 때 암기대회에 나가 대상을 받았을 때였나. 뿌듯해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더 잘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였을까. 내 인생은 온통 "그 눈빛"으로 가득 차서 내 안의 순수한 기쁨을 보려면 남의 시선이라는 짙은 안개를 한참 걷어내야 했다. 다 걷어내고 나면 아주 작은 기쁨 만이 있었는데, 그것 조차 순수한 기쁨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냈고, 그렇게 자랐으니 당연하게 대학생이 되어서도 성적 장학금을 받으려고 죽을 듯이 노력했으며, 모든 것을 높은 성적과 좋은 결과로 돌려받기를 원했다. 그러니 회사원이 되어서도 나를 갉아먹는 지독한 인정 욕구의 노예가 되어 살게 된 것이다. 몸이 망가지고 나서야 그만둘 수 있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삶이었는가.
남의 시선, 인정 욕구 모두 비워내고 나를 바라보면 나는 참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옷을 안 사고도 1년 내내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딱히 외식을 하지 않아도 있는 재료로 창의적인 요리를 해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괜히 뿌듯한 일중 하나다). 명품이 없어도, 좋은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나도 내가 정말 뭘 원하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가고 싶은 만큼의 욕심은 없다.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짓밟아질 뻔했던 그 매니저는 나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마음 편한 게 최고예요" 내 성격을 알아서 해주시던 위로 담긴 한 마디이다. 다른 사람 시선에 무너지고, 불안해하고 결정하지 못할 때 내 마음이 편한지 귀 기울여 들으라던 한 마디. 나에게 그 사람은 회사에서의 유일한 어른이었다. 퇴사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난 그 작은 어른을 응원한다.
마음 편한 게 최고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