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노트북 비밀번호 "행복0909"

불안한 회사생활 속 행복 갈망하기

by 하안

한 해를 돌아보며 다이어리를 넘겨보다, 몇 달간 아무것도 적지 않아 텅 비어있는 페이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힘들었던 기간만큼 비어있는 중간의 몇 페이지들이 신경 쓰인다.


내 마음의 공백. 마비된 생각. 식어버린 마음.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주저앉아있던 날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디까지를 내 진짜 인생인지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나는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살았기에 오늘이 불행한 것이 너무 버거웠다.


나는 나를 위한 마음보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으로 움직였다.

책임감. 사랑. 부담감. 미움. 원망.

이제는 정확히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는 엉켜버린 감정들.


상사는 출근을 하자마자, 퇴근 후에, 술 먹고 늦은 밤에 전화를 걸어 업무의 사소한 잘잘못들을 따져댔다. 누가 가이드를 주었는지 책임을 물었고, 내 대답은 다른 분풀이 대상을 더 낳을 뿐이었다. 하루는 상사가 싫어하는 팀원의 이메일을 프린트해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었다. 이메일 문구 하나하나에 빨간 팬을 그어가며, 메일 제목부터 문구, 단어선택까지 철저하게 비난하며 나무랐다. 불편한 시간 속에서 언제든지 내가 타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내 안에 극심한 불안함이 자라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이직과 동시에 갑작스레 퇴사한 팀원 분이 생각이 났다. 그 당시에 취업시장 불황에도 불구하고 이직에 성공하여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이것저것 묻고 열심히 적응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분의 고장 난 마음은 전혀 내 열정에 응해줄 생각이 없었다. 무슨 질문만 하면 내가 들어온 이유라며 제대로 된 답변도 안 해주셨다. 그때는 패배자 같은 그 사람의 상황이 참 남의 일 같았다. 8년도 넘게 한 회사에 몸 담았지만, 다시는 이 업계에 돌아올 생각이 없다고 건너 들었다. 그때 당시에는 몰랐다. 가정도 있으신 분이 왜 그런 선택을 하셨을까? 이제야 이해가 된다. 살기 위한 선택이었구나. 하루하루의 행복을 영위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선택. 그 사람의 이야기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글감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겠다.


퇴사하는 그 순간에도 내 상사들은 책임을 물었다. 누구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냐고. 누구긴 당신들이지. 항상 잘못한 사람들이 무섭도록 뻔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좋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끝까지 자신을 잘잘못을 따지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미웠을까. 이제는 떠나는 사람의 입장에서 지난 나를 되돌아보니, 꾸역꾸역 안 맞는 곳에 맞추려고 했던 모습이 안쓰럽다. 그러지 않았어도 됐었는데.


내 회사 노트북 비밀번호는 "행복0909"이다. 출근하자마자 잠깐의 여유도 없이 바로 노트북을 켜서 비밀번호를 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나는 삭막한 사무실에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야 했다. 이 시간들이 모여 행복한 미래를 만들 것이라고. 그런데 잘못 생각했다. 행복은 목적이 될 수 없다. 행복은 지옥 같은 하루들을 참아내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간 속에서 느낄 수 있어야 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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