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은 언제나 잔인하다

나를 병들게 했던 회식 이야기

by 하안

나의 회사생활을 병들게 했던 건 일주일에 한 번씩, 적어도 한 달에 2번씩은 있었던 회식이었다. 회식자리에서는 주로 출신과 사는 곳, 어떤 가정에서 자랐고 어떤 가정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대학교는 둘째치고 어느 고등학교 출신인지를 물어보는 것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대학교는 노력으로 갈 수 있지만 고등학교는 아니라는 것이다. 상사는 회식자리에 있는 그 사람이 얼마나 부유하게 자랐는지를 가장 궁금해했다. 강남 8 학군 출신이 아니면 대화타깃은 빠르게 넘어갔다.


새로 들어온 매니저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어쩌면 가장 최적화된 타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강남 8 학군 출신. 같은 수준의 와이프를 만나 결혼해서, 지금도 그 동네에 잘 살고 있는 이야기를 회식 내내 들었어야 했다.


집 값이 얼마며, 어떻게 좋은 동네로 가야 하는지, 중학생 아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시간당 몇십만 원짜리 컨설팅을 받았다는 이야기들.


나는 그 시간이 정말 고역이었다. 가장 흥미 없다고 생각하는 주제의 이야기를 4시간이 넘게 들었어야 했으니.. 그런데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생각보다 내 인생과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똑같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고, 앞으로 시간만 지나면 똑같은 월급을 받을 것이며, 회식자리에서 함께 웃고 있는 내 모습이 조금 모순적이었다. 나라고 그런 인생을 거부하게 될까?


처음에는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니 생각이 점점 변해갔다. 나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해 시기하고 있었는가 아니면 정말 원하지 않았던가 고민하게 되었다.


그저 그런 인생을 살 수도 있었는데, 평범한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같아서. 만약 여기서 포기하면 인생에서 몇 번 안 되는 기회를 나 스스로 져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까 봐 두려움에 진실된 선택을 못하고 있었다.


그만두는 용기는 단순한 결심이 아니었다. 미래까지 엮여있는 운명의 사슬을 내 손으로 끊어내는 것. 어떤 결과가 벌어지더라도 두 다리로 버티고 서서 온전히 받아내야 하는 것. 하지만 인생은 가혹하게도 제시간에 출발하는 열차처럼 단 1분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순간순간의 선택을 믿고 나아가야 했다.


그래서 나에게 '가능성'은 잔인하게만 느껴졌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에서 출발해 자신을 미워하게 되는 종착점으로 가는 길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가지 내가 퇴사를 결심했던 기준은 단 하나의 질문이었다.


"나는 이 사람들처럼 살고 싶은가?"


부의 권력에 무릎 꿇는 건 치욕스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움'에 가까운 무언가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출신에 목매어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난 그들이 궁금해하는 게 궁금하지 않다. 그들이 관심 있는 것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들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역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가능성'은 여전히 잔인하지만 나는 내 질문에 솔직히 답할 것이다.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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