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의 마음을 가진 직장인의 이야기
나는 아직 초등학생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체육대회가 돌아오면 달리기를 제일 기대하던 아이가 기억난다. 항상 1등으로 도장을 받고, 계주는 항상 마지막 주자로 달려 기분 좋게 영웅이 되었던 것들도.
준비자세를 취하는 손 끝은 너무 떨려서 중심이 흔들릴 정도였다. 생각해 보면, 누가 아직까지도 내가 항상 1등으로 들어온 것을 기억하려나 싶다. 그래서인지 기억 속에는 출발선에서 불쌍할 정도로 떨고 있는 작은 아이만 남아있다. 난 그 순간을 즐겼었다면, 체육대회는 선선한 가을바람이 다가오는 날이라고 기억했을 것이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여전히 나는 떨고 있다.
떨고 긴장하고 울고 있다.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그 순간을 즐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난주 드디어 회사에게 퇴직의사를 밝혔고, 일주일 동안 죽은 사람처럼 지내다가 겨우 힘을 내어 몇 글자 적어보려고 한다.
입사 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인정욕구에 가득 찬 초등학생의 마음으로 회사를 다녔다. 생각해 보면 나와는 정말 맞지 않는 업무를 하면서, 버티면 해낼 수 있다고, 지금까지 한 번도 해내지 못한 적이 없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고장 난 사람처럼 밤새 펑펑 울다 잠이 들곤 했다.
계속되는 실패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해결되지 않는 그 상황이 정말 싫지만 미련한 건지 끈기가 있는 건지 나를 밀어붙였다. 나중에는 성향에 맞지 않는 것인지 내 머리가 안 좋은 탓인지 구분이 잘 안 갈 정도였으니 참 난감했다.
새벽까지 업무를 해도 끝이 나질 않았다. 나는 절망의 순간에도 겨우 긍정의 힘을 내 보았지만 빠져나오려고 애쓸수록 더 깊이 빠져버리는 늪에 갇힌 것처럼
더 깊은 곳으로 파묻힐 뿐이었다. 일에 매몰되고 싶지 않아도 내 신경은 온통 한 곳에 쏠려있었고
주변 사람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나는 그때도 오만했다.
내가 이겨내는 걸 보면 그대로 인정해 버릴 거면서
내 인생을 살아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말을 쉽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나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으며 정신은 엉키고 엉켜 풀기를 포기한 실뭉텅이처럼 되었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노력해보려고 해도 잠이 계속 몰려와서 미루고 미루다가 인생 자체를 포기하려고 했다. 여기서 포기는 삶 자체의 마침표라기보다는 능동적인 선택이 배제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나는 내 몸 깊숙이 어딘가에 무언가 자라나고 있음을 느꼈다. 초음파 검사를 하는데 이리저리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한 자리에서 꾹꾹 누르고 딸깍 거리는 마우스 소리에 고개를 위로 들어보니 작은 공모양의 무언가의 지름을 재고 있었다.
아 나는 왜 기쁘던가, 왜 안심이 되던가.
초음파 검사로 지름이 꽤 커 보이는 그것을 내 눈으로 보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포기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겠구나. 그 순간에도 남의 시선과 생각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내 인생을 망치고 있었던 시선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무수한 감정들에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억울함 슬픔 피곤한 무기력함 원망 분노
그리고 해방감
나밖에 모르는 이 작은 책을 엮어가며
내 마음속 작은 초등학생 아이도 위로하며
그렇게 다시 일어나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