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역에서 내리려고 했는데

취업 불황에 퇴사한 청년의 이야기

by 하안

나는 취업 불황에 퇴사한 청년이다. 어제는 갑자기 6개월 전 퇴사한 회사의 상무님에게 전화가 왔다. 부재중으로 남겨진 그 자국을 보며, 퇴사했던 그 시기가 떠올랐다. 퇴사하기 직전에 시즌동안 함께 일할 인턴을 뽑고 있었는데, 불확실한 인턴 2명 자리에 200명이 지원했단다. (나중에 들었지만 결국 아무도 뽑지 않았다고 했다. 잔인한 사람들..) 화려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인턴 자리에 지원해서 경쟁을 해야 했다. 그들의 경쟁을 지켜보며 퇴사하는 심정이 아직도 생각난다. 힘들었던 과거는 점점 미화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못 버틴 건지, 정말 버틸 수 없었던 게 맞았는지 헷갈렸다. 퇴사 후에 꿈에서도 열심히 일했다. 인정받기 위해 지독하게도 일했다.


퇴사하고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자주 하는 표현이 있다. 달리는 기차에서 떠밀려 내려진 기분이라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 알면서도, 자리가 따뜻하고 편안하니 다음 역쯤에서 내리려고 했었다. 적당히 돈도 모으고,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면 천천히 퇴사하려고 했던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타이밍이 아닌 생뚱맞은 순간에 달리는 기차에서 떨어진 기분이다. 황량한 벌판에 멀뚱히 서서 어디 있는지 조차 모르겠는 기분. 그러나 기차에 앉아있던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모든 것이 무의미해짐을 느꼈다. 회사를 다니는 내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살아있음을 체감하기 어려웠다. 그저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를 살아내기에 급급했다.


그러다 하루는 친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행복하다는 말을 해주었다. 일 년 전에 시작한 영어 스터디는 방학을 맞이해 쉬어가고 있고, 돈도 차곡차곡 잘 모으고 있으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다고 했다. 점심시간에 소소한 일상과 웃음 나누면서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그 말. 듣는 내내 부러움과 동시에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래,

기차에서 떨어졌어도

다시 정신 차리고 일어날 때이다.

행복하게 일하고 있는 나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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