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가능성 찾기
내가 이 소재로 글을 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만큼 글을 쓸 때면 간혹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나마저도 잊고 있다가, 유럽에 다녀온 친구의 엽서중간쯤에 적힌 한 문장으로 내 마음이 환기되었던 경험을 적어보려고 한다.
편지에 적힌 친구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그 주제로 소설을 써본다던 너를 보며, 아마 너는 특별한 일을 해내지 않을까 생각했어". 이 한 문장을 읽고 나는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참고로 이 친구는 나의 글을 좋아하고 응원해 주는 소중한 사람이다.) 사람은 참 단순하다. 정말 이상하다. 수많은 위로와 명상, 자기 합리화로도 달래 지지 않던 내 마음이었는데, 이 한 문장으로 중심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이 실패를 거듭하고, 꾸준함을 단련하는 것을 제일 어려워하며, 어느 것 하나 깊이 있게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퇴사 이후에는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이 끊이지 않았고, 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죽을 때까지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이 항상 괴롭혔다. 하지만 이런 내가 이 편지의 단 한 문장으로 책을 쓰겠다는 생각까지 다다른 것이다.
그 당시에 내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주던 친구들에게 “꼬리”를 주제로 글을 쓰고 싶다고 했었다. 대충 이야기의 시작은 ‘꼬리뼈에서 꼬리가 자란 사람들’이었다. 인류는 꼬리가 퇴화되어 꼬리뼈가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반대로 꼬리뼈가 진화되어 꼬리가 생겼다는 설정. 그래서 꼬리가 생긴 인간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었기에 펼쳐지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었다. 강아지처럼 가분이 좋으면 꼬리를 흔들어대지만, 겁을 먹고 무서울 때면 움츠려드는 꼬리를 가진 연약한 인류. 지금 생각해 봐도 꽤나 흥미로운 주제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편지를 통해 과거의 내가 기분 좋게 떠들어대는 모습을 떠올렸다. 난 아마 사람들이 서로 거짓 없이 투명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정말 무섭게도 지금도 나는 ‘솔직함’의 가치에 매달린다. '솔직한 사람이고 싶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쓸 정도로. 난 학창 시절부터 적당한 착한 거짓말로도 쉽게 마음이 좌절되는 사람이었다. 솔직함으로 상처 주는 것이 더 싫어서 거짓말로 나를 괴롭히던.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연인관계에서는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믿으며 점점 대담한 거짓말을 한다. 그러다 한 번은 토할 것처럼 울렁거리며 솔직하고 싶다고 울부짖었을 때도 있었다. 나는 그때 내가 만나고 있던 사람에게 나의 가장 부끄러운 비밀을 꺼내 이야기했었다. 그 사람은 외국에서 자란 사람이라 가늠할 수 없는 총량의 포용력을 가졌으리라 믿었던 것 같다. 나 또한 7년 정도의 세월을 바쳐 겨우 받아들인 그 사실을 가볍게 받아주기 원했다. 하지만 차갑게 마주친 눈빛에서 실패를 인정했다. 첫 용기에 큰 실패로 마주하자 나는 그 관계에서 도망쳤다. 정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줄 영원한 사랑 같은 것은 있는 것일까.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진지했다. 나는 그렇게까지 솔직하고 싶었던 걸까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결국은 솔직함이다. 나는 솔직해지기 위해서 지금도 글을 쓴다. 그리고 시골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으며 반드시 올해 안에 내가 직접 쓴 책을 발간하리라 다짐한다. 나의 이 작은 다짐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