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해놓은 자유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내가 생각하는 자유로움에는 정답이 있다. 구체적인 이미지가 있다.
히피펌을 단단히 한 머리, 검게 그을린 피부, 속옷을 입지 않은 그런 자유로운 여자의 모습. (서핑까지 할 수 있다면 금상천화일 것 같다.)
난 곱슬머리다. 어렸을 때는 파마를 하지 않아도 푸들처럼 머리가 복슬복슬했다. (친오빠의 학창 시절 별명은 베토벤이었다. 아마 우리 집안에 아주 지독한 곱슬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 학창 시절 고데기와 나는 한 몸이었다. 등교 전에는 뜨거운 고데기에 이마를 데어도 끝까지 머리를 펴야 했다. 그렇게 평생을 단정한 이미지를 추구하며 생머리를 유지하던 나는, 퇴사와 동시에 나를 나답게 돌아가게 하기 위한 명분으로 제일 먼저 히피펌을 했다. 앞머리까지 파마를 한 적은 처음이었는데,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앞머리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파마를 풀어줄 생각을 안 한다. 곱슬인데 히피펌까지 하니 정말 파마가 안 풀린다. 처음에는 마음에 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못생겨 보인다고 해야 하나.. 괜히 마음에 안 들었다. 고데기를 열심히 한 생머리가 나와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실제로 생머리뿐만 아니라 오피스룩과 같은 단정한 옷이 잘 어울리는 편이다. 하지만 평소의 나는 펑퍼짐한 바지를 질질 끌고 다닌다. 그리고 항상 마음속에서 히피펌의 까무잡잡한 여자를 상상한다.
왜 그럴까. 왜 내가 생각하는 자유의 모습과 실제의 나는 이렇게나 다를까.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나 자신을 가두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자유는 무엇일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정의한 자유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유로움이란 항상 그런 모습이 아닐 수 있다고. 자유에는 정답이 없다. 심지어 그 모습이 내가 생각한 모습이 아니더라도. 나는 인정할 수 있을까? 나는 요즘 자유에 대해서 생각한다. 돈으로부터의 자유. 시간으로부터의 자유. 사람과 사랑으로부터의 자유. 자유는 어떤 지점으로부터 벗어나야만 얻을 수 있을까? 난 어떤 자유를 가장 원하는 사람일까?
감옥 같은 오피스룩을 입고 회사에 다니며, 실제로 나는 돈으로부터의 자유를 느꼈다. 통장잔고 눈치 볼 필요 없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사주고 나눠줄 수 있었으며, 그 시간 속에서 자유를 느꼈다. 하지만 나는 항상 또 다른 형태의 자유를 갈구했다. 무엇보다 답답한 정장을 벗고 싶었고, 아침마다 앞머리를 피며 타들어가는 내 머리카락을 동정하기 싫었으며, 나만의 시간을 보장받기 원했다. 요즘은 그래서 결국 어떤 자유가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할까를 고민한다.
자유에게 정답을 구하지 말자. 내가 정해놓은 자유의 모습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 자유가 허락하는 만큼 평안함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