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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아래 떠나지 않는 사람들

이탈리아 소도치 칼치 여행기

by 하안


유럽 사람들은 일광욕을 즐긴다. 얼굴이 시뻘게졌는데도 끝까지 테라스에서 식사를 끝마치고, 아무것도 없이 잔디에 드러누워버린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일광욕하는 사람들은 항상 유럽풍경의 일부가 된다. 이탈리아 피사에 도착해서 나는 풍경 그대로 잔디에 드러누웠다. 긴 시간 혼자 여행하다 보면 외로움이 사무칠 때가 있는데, 이런 유명한 관광지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을 보다 보면 더 그렇다.


나는 햇빛아래 혼자여도 괜찮다고 생각해 본다. 그 따스함이 순간의 외로움보다 극적으로 크게 느껴져서 혼자 왔는지도 잊어버릴 때가 있다.



피사에서 도망쳐 하루에 버스가 몇 대 다니지 않는 작은 산골마을 갈치로 향했다. 축구부 아이들의 장난치는 소리, 핸드폰 게임 소리, 속삭이는 소리에 잠깐 눈 붙이고 있자니, 정말 ‘마을버스’에 탄 기분이었다. 마지막 정거장에서 혼자 내려 걸어가는 길, 들개 짖는 소리에 마음 깊숙이 얼마 남지 않는 모험심이 바닥남을 느낀다.



구석 골목진 곳에 있는 호스텔에 도착했다. 2층집의 자연을 그대로 녹인 공간이었다. 호스트는 까맣게 탄 작은 동양인 여자애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반갑게 맞이한다. 내 국적을 듣더니 이곳을 처음 오픈했을 때 첫 손님이 한국사람이었다며 무장해제 웃음을 짓는다.



‘미아’라는 고양이의 꾹꾹이로 밤새 환영식을 치렀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쓰는 호스텔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고양이와 함께 쓰는 호스텔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호스텔은 당연히 돈 주고 가는 곳이지만 ’돈 주고 가고 싶을 정도‘로 좋다.



유럽에 몇 주 살다 보니 툭하면 일광욕하는 그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난방시설이 없는 한기가 도는 건물에 있다가 아침햇살이 마중 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피부 속으로 햇살이 깊이 스며들도록 옷을 걷는다. 괜히 손으로 피부 겉면을 슥슥 소리 나도록 비비기도 한다(더 잘 스며들거라고 믿는다). 햇살이 아무리 뜨거워도 밤새 가득 찬 기운을 덜어내기에는 부족하다.



나는 태양과 마주 보고 앉아서 가만히 시간을 읽는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도 상상해 보고, 또 어떤 색깔을 품고 있는지 묻는다. 뜨거운 햇살을 모자로 막아보지만 역부족이다. 주변을 맴도는 벌은 계속 나를 괴롭히지만 난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햇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어떤 방해도 막을 수 없다. 필요로 하는 것과 그것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의 조화는 아름답다. 오랜 시간을 들여 받아들이려는 태도와 열린 마음.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다. 그 아무도 떼어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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