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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칼데라

그리스 산토리니 이아마을 방문기

by 하안

산토리니 공항에서 유명하다는 이아마을로 가는 길에 문득 황량하는 생각을 했다. 하얀색 건물들이 겹쳐있는 칼데라가 보이기 전에 펼쳐진 아무것도 없는 들판. 들판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황무지의 모습이었다. 말라버린 잎들과 건조하다 못해 말라비틀어진 풍경이 당황스러웠다.


물론 마을에 도착하고 내가 알던 새하얀 건물들과 파란 하늘들이 펼쳐져 있었다. 내가 알던 세상의 모습이 아니었다. 같은 하늘아래 이렇게 다른 풍경이 있을 수 있을까. 너무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는 파랗고 하얀 팔레트 같은 공간 속에서도 처음 그 황량한 산토리니의 첫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엄마가 이 아무것도 아닌 땅을 꿈의 휴양지로 만든 건 오직 하얀 건물들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무인도였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곳에 하얀 건물들 하나로 전 세계 사람들의 인기여행지가 되었다니.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유일무이한 공간으로 만드는 단 한 가지.


세상은 참 이상하다. 아무것도 아닌 단 한 가지로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고 세상이 바뀐다. 어떤 것이 나의 무채색 인생을 팔레트처럼 바꿔줄 수 있을까? 그 한 가지는 어디에 있을까?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왔고, 산토리니를 보며 다시 한번 내 마음속의 하얀 건물, 칼데라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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