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찾기 위한 여정
터키는 골목마다 낮은 테이블과 작은 의자들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투명한 유리잔에 뜨거운 홍차를 계속 마신다.
한 잔.. 두 잔.. 하루에 다섯 잔, 여섯 잔까지도 마신다.
그들에게 홍차는 한국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음료수 같은 수준을 뛰어넘어 ‘시간’으로 자리 잡은 듯했다. 그들은 매일 여유로움을 마신다. 골목 커피숍에 앉아 있으면, 터키식 차와 커피, 담배를 두고 몇 시간이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저 사람들은 일을 안 하나.. 일은 언제 하러 가나.. 생각이 들 정도로 한 낮 오후에도 가득 차 있는 사람들. 등받이도 없는 작은 의자에 엉덩이가 다 튀어나와 근육통이 올 것 같은데도 저렇게나 할 말이 많다.
시장에는 홍차 배달부가 있다. 시계추 같은 쟁반에 작은 홍차 잔 두 개와 티스푼, 설탕을 올려서 쏟아질 것 같은데 절대 쏟아지지 않게 홍차를 배달한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가게에 들어서면 ‘홍차 배달이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홍차를 받아 든 사람들은 한 손에는 홍차,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시간을 보낸다. 잠깐 들른 홍차 배달부와의 스몰토크도 잊지 않는다. 무슨 할 말이 저렇게 많을까.
갈라타 다리 위에는 플라스틱 통 하나와 낚싯대 하나로 온종일 낚시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낚아 올리는 물고기들을 보면 피라미 수준으로 작다. 어떤 의미로 잡는지 궁금해지는 정도의 크기이다. 그래도 그들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낚시를 한다. 미끼를 끼우다 놓쳐서 바닥에 떨어져도 웃는다. 피라미 수준의 물고기를 낚아 올려도 웃는다. 지나가다 관광객이 이것저것 물어보면 직접 잡게도 해준다.
홍차, 담배, 낚시
정답은 여유. 터키 사람들의 홍차와 담배, 낚시 모두 여유에서 시작된다. 나는 정작 한국에서 똑같이 커피를 마셔도 그 시간이 여유롭다고 느낀 적은 없다. 커피는 항상 정신을 깨우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해야 할 때, 피곤하고 졸리니까, 살려고, 살려고 마셨다.
내가 틈만 나면 여행을 가려는 이유기도 하다.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 왜인지 한국에서 여유를 찾으려고 하면 어색하다. 적절한 설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죄책감 같은 감정이 서서히 밀려온다. 누군가는 이 시간에 뭘 하고 있을 텐데, 그 사람은 벌써 그 정도 수준의 일을 하던데, 다음 주에는 누가 결혼하는데.. 나는 이러고 있어도 될까? 하는 걱정들. 객관자의 입장에 서면 나도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묻는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끝없이 엄격하다. 한없이 불안하다. 그러나 유럽여행을 오면 이 사람들에 뒤섞여 나도 여유로워도 된다고 느낀다. 나는 그 마음을 간절히 원한 것이다. 언제나. 여유로워도 되는 마음.
여유를 찾으러.
일 년에 몇 번, 해외여행만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시간이 아닌 하루하루 여유롭게 살고 싶은,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한 인간의 도전.
28살 가을, 두 달 반의 여행 동안 그 정답을 찾아 헤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