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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라엘라 Feb 02. 2020

ep12. 이제는 토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왜 나는 음식을 멈추질 못하지

 호주에서  가장 오래, 마지막까지 한 직업은 데이케어(유치원) 교사였다.

 호주의 유치원은 보통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열기 때문에, 일찍 나오는 사람은 일찍 퇴근한다. 내가 중대한 결심을 한 그 날엔 아침 6시에 출근을 해서 일찍 마친 날이었다. 퇴근을 두 시 반에 했으니, 이제 쫌 배가 고플만한 시간이었다.  

퇴근길에 다 먹어버린 핫 크로스 번 6개 묶음 빵




 기차를 타기 전에 마트에 들러 요기할 거리를 사기로 했다. 마트에 들어가자마자, 고민하지 않고 바로 왼쪽으로 향했다. 마트마다 구조가 조금씩 다르지만, 왼쪽에 보통 베이커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양도 많고 배도 부를만한 큰 빵 한 봉지를 집었다. 모닝빵이 6개 붙어있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우유도 하나 사서 6조각 중에 한 조각을 떼어먹을 생각이었다.





기차는 20분에 한 대씩 오기 때문에, 기다리면서 허기를 때우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빵과 우유를 먹었고, 미칠듯한 허기는 가라앉았다.  다 먹으면 기차가 올 줄 알았는데, 5분이 더 남았다. 배는 고프지 않지만, 입이 궁금해서 넣어놨던 빵 봉지를 주섬주섬 다시 꺼내서 한 조각 더 뜯어먹었다.

두 조각을 다 먹을 즈음에서야 기차가 왔고, 아쉬운 마음으로 빵을 다시 넣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특히 이상했다. 집으로 가는 내내 가방에 넣어둔 빵 생각만 나는 것이었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지금 당장 너무 먹고 싶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의식의 흐름에 따라 빵을 꺼냈고, 기차역에서 집까지 20분이 되는 거리를 걸어가며 남은 빵 네 조각을 다 먹었다. (입에 거의 쑤셔 넣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여기서 놀라웠던 건 먹는 중에도 많이 먹는다는 죄책감이 들면서, 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단 것이다.  


결국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6번 식사를 할 수 있는 빵 6 조각을 다 먹었고, 집에 가자마자 방금 먹은 빵들을 게우러 화장실에 갔다. 한두 번 게워내는 게 아니니, 익숙할 법도 한데, 억지로 토하는 그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그 날은 고통스러움을 넘어 눈물이 났다.



남들처럼 배고픔을 느껴서 먹었을 뿐인데...

나는 왜 배부름의 신호에 멈추지 못하는 건지,
죄책감을 덜어내는 방법이 고작 내 손가락과 목을 혹사시켜서 토하는 것 밖에 없는 건지,
언제까지 음식에 갇혀서 살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토한다고 체중이 줄거나 유지되는 것도 아니었다.
또다시 60kg를 넘었고, 그 당시의 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지 못했다.




내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일까?
난 진짜 문제가 있는 사람인 걸까?

고칠 수 있는 문제이긴 한 걸까?


살이 1g만 쪄도 벌벌 떠는 이 정신병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당최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하나씩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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