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영양분을 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시들겠지
올 연말연시는 서글펐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 때문에 크리스마스는 우울했다. 새해 첫날부터 뿌연 회색 구름 뒤에 숨어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는 해를 아쉬워하며 해돋이를 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친구나 지인들에게 인사를 전하려고 카톡을 열었다.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쭉 드러났다. 리스트를 쭉 훑어보고 있자니 올 한 해 나는 정말 소통을 안 하고 살았구나 싶었다.
추석에 연락하고 크리스마스 때 연락을 안 한 친구들이 대다수였고, 그나마 연락하는 사람들은 가족들이나 직장동료들, 그리고 가까이 사는 지인들 몇 분이 전부였다.
물론 같은 나라에 살고 있지 않으니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전화기 붙잡고 길게 수다를 떠는 일이 익숙지 않다. 시차도 다르고, 혹여나 오랜만에 통화에 성공했다 해도 5-10분 만에 전화를 끊기도 민망하다. 통화를 시작하면 궁금한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보통 30분~1시간은 기본이고 예의이다. 그렇다 보니 여유가 있는 날을 선택해서 통화를 해야 한다. 그런데 늘 시간에 쫓기며 살다 보니 그런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성탄절과 새해 인사정도는 해야지 싶었다. 보고 싶은 친구들, 궁금한 사람들, 오다가다 인연이 된 사람들에게 안부인사를 전한다.
그런데 카톡을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은 사람들의 이름이 한 두명 눈에 들어온다. 지금 나와 나쁜 관계는 아니지만, 한 두 번은 불편한 대화를 했던 사람들이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상대방도 나를 생각하면 불편할까? 상대방은 내가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반가워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직설적이라서 나에게 상처를 줬거나, 지나치게 무관심해서 내 자존감에 상처를 입혔던 사람들이다. 우연이라도 누군가가 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면 속에서 불편한 감정들이 다시 피어오른다. 잊고 살아야지 하면서도 뿌리가 뽑히지 않고, 땅속에 숨어있다 불식 간에 싹을 틔우고 빠른 속도로 잎을 낸다.
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상처 입은 자존심에 접붙여진 열정들은 가장 뿌리 깊은 것들로, 늙어서도 여전히 푸르고 왕성하다"라고 말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되면 그 상처가 결국은 가슴에 뿌리를 내리고, 시간이 지나도 상처는 아물지 않고, 점점 푸르고 왕성하게 자란다는 말이다.
그렇구나. 다 잊었다고, 나는 쿨한 사람이니까, 사람은 그럴 수 있으니까 여러 번 생각하고 마음을 다스려 본다. 그리고 최대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꺼내려하지 않는다. 뿌리를 내린 가슴에 상처를 키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뿌리는 여전히 남아있는 듯 했다.
나는 새해를 맞이하여 그 상처 입은 자존심에 접붙여진 열정의 뿌리들을 뽑아버리기로 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예쁜 카드와 함께 새해 축하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래서 새해에는 그 이름이 불편하지 않았으면 해요."
물론, 이렇게 메시지를 보낸 건 아니다. 하지만, 나의 메시지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있었다.
뿌리를 내린다고 다 자라는 건 아니니까. 물과 영양분을 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시들어가다 죽어가겠지. 2026년 새해에는 부정적인 생각의 물과 영양분은 주지 않는 걸로, 그래서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