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느닷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 쓰는 가족의 탄생

# 아내가 2주 전부터 느닷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회사 보고서나 일기 형식의 글은 써 왔지만, 본격적으로 글 쓰기 수업을 받으며 매일 글을 쓰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런데 아내는 갑자기 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아내는 불안한 감정 상태를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기를 좋아한다. 예를 들어, 일요일 아침에 아이들과 잠깐 바람 쐬러 나가는 일도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으면 절대 출발하지 않는다. 난 우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운전대를 잡고 움직인다. 그런 다음에 아내와 아이들과 대화를 통해 갈 곳을 정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내는 목적지가 없는 이동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좀 놓이나 보다.


또한 아내는 불안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재테크도 열심히 공부하고 자기 계발도 열심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뒤쳐진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라 연간 목표, 3년 목표 그리고 10년 목표도 세워 놓는다. 그런데 인생이란 놈이 우리가 계획한 대로 살도록 그냥 어디 내버려 두던가? 계획은 그저 계획일 뿐이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예기치 못한 사건과 숙제를 우리에게 던져 준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할 아량을 베푼다. 그 도전을 무시하고 체념하며 살 것인지 아니면 도전하고 극복하며 살아갈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아내는 후자의 길을 선택하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주 사용하는 행동 패턴을 만들어 냈다. 그 행동 패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례가 있다.


우리 부부는 모두 직장인이다. 소비만 좀 줄이면 두 명의 월급으로 많지는 않지만 매달 저축할 수 있을 정도는 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월급이 입금되고 카드 값이 정산되는 날이면 아내는 급 우울해한다. 부부가 돈을 모으는데도 마이너스 통장은 회복은커녕 뒷걸음치는 달도 있다. 그럼 아내는 바로 불안감을 느끼고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통제를 하기 시작한다. 우리 가족의 소비 패턴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교육비가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소비 패턴을 막 마친 아내의 레이더 망에 아이들이 공부 안 하고 피리를 불거나 놀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면 불똥이 아이들에게 튄다. 평상 시면 넘어갈 상황도 카드 값으로 통장 잔고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날은 아이들도 조심해야 하는 날이다.


아내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면 그렇겠는가? 물론 그날은 나도 통제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다. 나의 용돈과 소비 행태가 도마 위에 올라간다. 나도 억울하기에 몇 마디 변명을 해 보지만 불안감에 예민해진 아내 앞에서는 계란으로 바위 깨기이다. 이 모든 아내의 돌발행동은 불안한 감정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내에게 충언을 던졌다. 그래 봐야 나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수준이지만 말이다.




난 화를 다스리는 것이 무척 힘든 사람이었다. 특히 회사에서 상사로부터 꾸중을 듣거나 업무가 잘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되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화는 퇴근 시간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술과 담배 그리고 동료와 상사의 험담을 쏟아 내면서 간신히 화를 억누르며 직장 생활을 연명해 왔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참가한 모임에서 하나의 미션을 제시받았다. 그 미션은 30일 동안 매일 글 쓰는 것이었다. 주제별로 글을 써야 하다 보니 직장 생활에 대하여도 쓰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 동안 직장 관련 글을 쓰다 보니 글의 소재가 바닥이 났다. 그런 와중에 내가 맡은 프로젝트에 큰 문제가 터졌고 그 모든 문제가 나의 실수로 발생했다는 상사의 책임 전가와 억지에 화가 치솟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화가 진정되지 않아 책상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화장실로 도피했다. 화는 났지만 글 쓰기 미션을 해야 한다는 숙제가 떠 올랐다. 놀면 뭐하겠는가? 그래서 조금 전 상사에게 혼난 억울한 상황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처음엔 글의 내용이 나의 억울함과 상사에 대한 험담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나의 실수가 눈에 들어왔고 상사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난 글을 씀으로써 사건을 재구성하는 행운을 얻은 것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화가 날 때마다 난 회사 화장실로 몰래 숨어 들어가 핸드폰 메모장을 열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 습관이 생겼다.



화장실에서 글을 쓰다(출처: 구글 이미지)


아내도 회사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종종 받는다. 아내는 비효율적인 것을 싫어한다. 같은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효율적으로 일하는 문화를 도입하려고 무던히도 애쓴다. 그렇다 보니 종종 변화를 싫어하는 직원들의 노골적인 반대에 부딪히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내가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떠냐고 충언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의 이 오래된 제안 한마디가 최근 스트레스받는 상황에서 갑자기 생각나서 글쓰기 과정에 덜컥 등록했다고 한다. 그리고 글쓰기 과정에서 내준 ‘매일 1편의 글쓰기’ 숙제를 제출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한다. 나의 충언이 고마웠는지 그 보답으로 아내는 본인이 쓴 따끈따끈한 글을 나에게 카톡으로 보내주고 있다. 최근 아내가 보내주는 글을 읽는 재미에 빠졌다.


글쓰기 수업에서 지정해 준 주제 별로 글을 쓰는 모양이다. 이번 주는 가족에 관한 주제인지 부모님, 남편 그리고 자녀에 관한 글들을 보내 주고 있다. 남편인 나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는 피식 웃음도 나왔고 내가 몰랐던 아내의 마음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유치원생인 둘째 딸, 혜율이에게 보낸 편지는 눈시울이 붉어져서 목이 메일 정도였다. 혜율이는 평상시 애교도 넘쳐나고 방긋방긋 잘 웃고 말도 예쁘게 잘해서 엄마 아빠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그런데 최근엔 속상한 일이 있는지 시무룩한 표정을 짓거나 억지를 부리며 우는 날이 종종 발생했었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햇살처럼 쏟아지던 엄마의 사랑이 언니에게 요 며칠 사이 치우치면서 엄마의 사랑을 잃어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혜율이의 마음을 안쓰럽게 생각하며 아내가 작은 딸에게 쓴 글 일부를 소개한다.



"우리 작은 공주님은 아침에 뭐가 그렇게 속상해서 소리 지르고 울고 그랬을까? 엄마가 언니만 예뻐하고 칭찬하는 것 같아서 속상하니? 우리 혜율이, 엄마의 위로가 되는 딸. 언니한테는 엄마가 너무 많은 빚이 있단다. 언니가 태어나고 어렸을 때, 엄마가 언니를 너무 혼자 놔뒀어. 엄마가 공부한다고 혼자 놔두고, 일할 때는 말도 안 통하는 인도네시아 분께 맡겨놓고 엄마가 잘 챙기지도 못했단다. 그래서 언니가 좀 많이 힘들었어. 언니의 마음에 구멍들이 좀 있어서. 엄마랑 아빠가 좀 더 따뜻하게 돌봐줘야 한단다."


아내가 이 편지를 혜율이에게 보여 주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설령 보여 주었다 한들 엄마가 언니에게 왜 빚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와 아내가 언니에게 빚을 지고 있을 때, 혜율이는 이 세상의 빛을 보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 이 편지는 엄청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이 글을 쓰면서 두 딸들과의 지나온 추억을 되짚어 볼 기회를 가졌고 자칫 두 자녀에 대한 사랑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실감하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글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균형감각을 회복시켜주는 힘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매번 넘어지는 곳에서 왜 넘어지는지 그 이유를 성찰할 기회를 주고 건강한 생각과 행동을 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앞에서 예를 든 것처럼, 내가 왜 직장 생활하면서 비슷한 상황에서 매번 스트레스를 받고 화를 참지 못하는지 성찰할 기회를 주고 술과 담배 등의 나쁜 행동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대안을 선물해 주었다. 아내가 왜 카드 값이 빠져나간 텅 빈 통장을 볼 때마다 매번 불안감을 느끼고 가족을 통제하려고 하는지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고 타인을 통제하려는 행동을 자제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많은 작가들은 잘 써진 글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변화시킬 영향력이 있다고 믿기에 글을 쓴다고 말한다. 하지만 매번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는 것은 유명한 작가에게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 습관은 최소한 글쓴이 자신의 마음을 성찰시키고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내가 느닷없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일 것이다. 남편과 딸들의 행동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봄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이해하는 최고의 수단, 그리고 주변 사람을 이해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평화의 메신저가 바로 글쓰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내의 글쓰기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편인 내가 글을 쓰니 아내도 동참했다. 요즘 초등학교 4학년인 큰 딸도 나름 장편의 창작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기회가 된다면 딸의 글도 소개하려고 한다.


우리 가족은 2017년 '습관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2019년 조금 더 진화하여 '글 쓰는 가족'이 되어 가고 있다. 화가 나고 짜증 나는 일상생활 속에서 나의 상처 받은 마음을 가족에게 융단 폭격하듯 내뱉던 나쁜 행동을 멈추고 그대로 하얀 종이 위에 쏟아 낸 것뿐이지만 그 결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 가족이 오늘도 글을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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