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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범용의 습관홈트 Sep 11. 2019

지레짐작이 부른 참사

우리 회사에는 사무실 건물이 다섯 채가 있다. 최근 신축 건물 한 채가 개관하면서 부서별 이동이 있었다. 그 여파로 우리 팀도 옆 건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나는 올해부터 조직문화 담당자 역할도 겸하고 있어서 이사 떡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떡을 주문하려면 인원을 파악해야 했다. 새로 입주한 건물에는 약 300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그렇지만 예산 한도 내에서 떡을 주문해야 하는 관계로 휴가나 출장 등으로 잠시 자리를 비운 직원들은 인원수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각 부서별 조직문화 담당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사 떡을 돌리려고 하니 현재 출근한 인원수를 파악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집계된 출근 인원수는 약 270명 정도였다.


악한 인원수에 맞게 떡을 주문하고 각 부서별 인원수에 맞게 떡을 돌렸다. 처음 하는 일이지만 체계적으로 빠른 시간 안에 일을 처리한 나 자신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런 뿌듯한 감정이 조금 진정이 되어갈 무렵 팀장님이 나를 호출해서 떡은 잘 돌렸는지 묻는다. 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조금 전 인원수에 맞게 잘 돌렸다고 답변을 드렸다.


그러자 팀장님이 각 부서 임원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는지 물었다. 팀장님 입장에서는 상사인 부사장을 포함한 고위 임원들도 떡을 받았는지가 중요했다. 난 지레짐작으로 당연히 인원수 명단에 임원들도 포함된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확답을 하기엔 내 정보가 빈약했다. 팀장님에겐 바로 확인해 보겠다고 답변을 드린 후에 인원수 파악을 요청했던 담당자들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유행가 가사가 나의 등골을 타고 싸늘하게 연주되고 있는 듯했다.


난 당연히 인원수에 임원들도 포함될 것으로 짐작했지만 인원수 파악 요청을 받은 담당자의 셈법에는 임원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내 불찰이었다. 내가 말한 인원 수와 상대방이 이해하는 인원수는 이렇게 차이가 있었다. 나는 부랴부랴 임원들 수만큼 추가로 떡을 주문했다.




지난주 일이다. 난‘소통문화 향상’이란 주제로 외부 강사를 초빙하여 팀 동료들과 워크숍을 기획했다. 생각보다 준비할 일이 많았다. 팀장 승인도 받아야 하고 강사 섭외를 위한 추가 예산도 받아야 했다. 그리고 교육장도 미리 예약을 해야 했다. 교육장 담당자와 통화하니 교육 일정과 내용을 포함한 상세 정보를 이메일로 보내라고 했다. 이메일을 보내고 통화를 했더니 예약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이유를 물으니 교육장에서는 워크숍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답변이었다. 내가 교육장 사용 신청을 보낸 이메일 제목이 <소통 문화 향상을 위한 워크숍>이었는데 이 제목이 논란의 대상이었다. 한숨이 나왔다. 그렇지만 차근차근 설명했다. 외부 강사를 초빙하여 팀 소통문화를 향상하기 위한 교육을 받는 3시간짜리 강의이니 당연히 교육과 관련된 목적이라고 인내심을 발휘해 설명했다. 교육장 담당자도 납득을 했는지 알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제목을 워크숍 대신 교육이라고 변경하여 이메일을 다시 보내달라고 하여 기쁜 마음으로 제목을 변경하여 재전송했다. 땀이 조금 흘렀었지만 교육장 예약이 일단락되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흘렀다. 교육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체크 리스트를 점검하다가 교육장 예약이란 항목에 눈길이 잠시 멈추었다. 일주일 전에 전화까지 해서 워크숍 대신 교육이라고 제목까지 수정해서 이메일을 다시 보냈는데 예약이 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런데 자꾸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사내 메신저로 교육장 담당자와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이게  말인가? 내가 신청한 날에 다른 팀이 이미 예약을 했다는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전화를 걸어 이유를 물었다. 담당자는 다시 뜨거운 감자였던 워크숍을 거론했다. "교육장은 교육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는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말문이 막혔다. 화가 났지만 아쉬운 쪽은 나였다. 만약을 대비해야 했다. 전화기를 오른쪽 어깨와 턱을 이용해 간신히 붙들어 놓고 양손으로 일반 회의실이라도 빈 곳이 있는지 폭풍 검색했다. 교육장 담당자에게 차분히 따지는 일도 잊지 않았다. 분명 워크숍이란 제목을 지우고 소통 문화 향상 교육이라고 보냈다고 그날 일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녀는 기억난다고 답했다. 그렇지만 이메일 보낸 후 전화를 걸어 '교육실 예약 확정해 주세요'라는 그녀에겐 당연하지만 첫 경험인 나에겐 생뚱맞은 프로세스가 생략되어서 교육실 확정 이메일을 보내지 않고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녀는 지레짐작으로 내가 당연히 교육장 예약 프로세스를 알고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교육장 담당자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초 간단한 예약 프로세스이지만 처음 예약하는 나에겐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프로세스였다. 다행히 다른 팀에서 양보를 해 주어 교육은 일정대로 잘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처음부터 교육장 예약 프로세스를 귀찮더라도 전부 설명해 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단 교육장 예약 프로세스만은 아니다. 업무 규정이 있다고 해도 부서별로 그들만 이해하고 있는 자잘한 프로세스가 있다. 그 자잘한 정보들이 타 부서원들의 뒷다리를 잡는 경우가 현업을 하다 보면 종종 발생한다.




자기 중심성은 다른 사람의 관점이나 필요,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관점, 필요, 입장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특성을 의미한다. 내가 떡을 돌릴 인원수를 파악할 때도 그렇고 교육장 담당 직원의 예약 프로세스도 자기 중심성에서 비롯된 참사였다.


최인철 교수는 그의 저서 프레임에서 자기 중심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기라는 프레임에 갇힌 우리는 의사 전달이 항상 정확하고 객관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전달한 말과 메모,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은 우리 자신의 프레임 속에서만 자명할 뿐, 다른 사람의 프레임에서 보자면 애매하기 일쑤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 들어라. 하지만 내가 최근 경험한 아찔한 참사에서 알 수 있듯이, 개떡은 개떡이고 찰떡은 찰떡이다. 지레짐작이란 나쁜 습관은 버리자. 그리고 나의 이해도와 상대의 이해도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사소한 것도 재확인하는 습관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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