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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범용의 습관홈트 Nov 25. 2019

루틴의 기쁨

2주 전에 우리 회사 노사협의회가 주관한 스핀볼 대회가 열렸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의 최고 인기 종목이었던 컬링은 얼음 위에서 펼쳐지지만, 스핀볼은 테이블 위에서 경기하는 컬링이다. 경기 방식은 테이블 레인 위에서 양손을 활용해 스핀볼을 점수 통(5점, 3점, 2점)에 넣어 많은 점수를 얻은 팀이 승리하는 간단한 게임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은 이 게임은 팀워크(Team Work)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핀볼 경기 장면


우리 회사의 스핀볼 대회에는 32개 팀(한 팀 당 6명으로 구성)이 참여하였고 토너먼트 경기로 4박 5일 동안 진행되었다. 우리 팀은 첫 경기였던 32강전에서 상대팀을 어렵게 이기고 16강에 진출했다. 팀장님과 부서원들이 응원해 주었다. 승리가 결정된 순간 서로 부둥켜안고 소리 지르며 기뻐했다. 우리가 평상시 이렇게 친했었나 싶을 정도로 승리의 여운은 오래갔다. 우리 부서는 회사가 매년 주관하는 행사에서 첫 게임에서 광탈하는 단골손님이었다. 그래서 부서원들도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의외의 승리를 거두자 격하게 기뻐한 것이리라.

그리고 이틀 뒤, 스핀볼 대회 16강전이 열렸다. 상대는 강적이었다. 32강은 단판 승부였지만 16강부터 결승까지는 3판 2선 승제였다. 우리 팀은 나의 마지막 스핀볼이 점수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첫판을 지고 말았다. 두 번째 판도 중반까지 큰 점수차로 뒤쳐져서 패색이 짙어갔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두 번째 판을 역전승으로 이겼다. 역전승의 원동력은 우리 팀이 잘했다기보다는 상대팀의 실수 때문이었다. 상대팀은 두 번째 게임에서 우리 팀이 가까스로 동점을 만들자 급격히 흔들렸다. 동점이 되자 마지막 게임에서 손이 떨리고 실수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우리 팀은 32강전을 어렵게 승리한 후 대회 참가자 6명 모두 자발적으로 회사에 남아 연습을 했다. 그리고 회사 근처의 스핀볼 연습장에 가서 사비를 들여 연습도 했다. 스핀볼은 밑바닥에 베어링이 부착되어 있고 스핀볼마다 무게도 달라서 미세한 힘의 차이에도 거리가 들쑥날쑥 차이가 발생하였다. 그래서 어떻게 양손으로 스핀볼을 잡는가, 양팔에 어느 정도 힘으로 밀어야 하는지에 따라 스핀볼의 방향과 거리가 달라진다. 따라서 높은 점수를 내기 위해서는 각자의 루틴이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꾸준한 연습이 있었기에 루틴도 만들 수 있었다.

루틴이 있다는 것은 선수의 긴장을 풀어주고 평상시 손동작, 어깨 넓이, 스핀볼을 던지는 힘의 크기를 일정하게 복원시켜서 평상시 실력의 근사치를 달성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프로야구 선수 박한이, 피겨스케이트 선수 김연아도 루틴으로 유명하다. 박한이 선수는 타석에 들어서서 헬멧을 썼다 벗은 후 허벅지를 손으로 한 번 치고 야구 방망이로 시작점을 표시하고 야구 방망이 한 번 휘두른 다음 투수의 공을 칠 준비를 마친다.


프로야구 박한이 선수 루틴


김연아 선수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빙판을 한 바퀴 돌고 뒤로 돌아 S자 그리며 요리조리 왔다 갔다 하며 시합 준비를 한다. 이처럼 운동선수들은 경기의 긴장감을 풀기 위해 각자 루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평상시 실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우리 팀의 경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 팀은 8강전에서 첫 번째 게임을 손쉽게 승리했다. 그러나 두 번째 게임에서 상대팀의 분발로 졌다. 결국 1-1 동점이 되었다. 마지막 세 번째 게임이 시작되었고 상대팀은 긴장했는지 실수를 남발했다. 상대 팀 선수들은 루틴이 없었다. 그래서 실수를 한 뒤 조급한 마음에 숨을 고르고 스핀볼을 집중하여 던지지 않고 빨리빨리 던졌다.

반면에 우리 팀은 두 번째 게임이 끝나고 각자의 루틴대로 스핀볼을 던지자고 상기시켰다. 나도 어깨를 쭉 올려 귀에 닿게 한 다음에 공을 던지기 전, 팔을 쭉 뻗어 스핀볼을 밀어주는 루틴을 지켜 나갔다. 6명의 팀원들이 각자의 루틴 동작으로 무게가 각기 다른 12개의 공을 던지니 긴장감 속에서도 연습 때의 80% 정도 실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연습 때처럼 편안하게 실전 경기도 임한다면 100%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실전의 긴장감은 손과 다리를 후들거리게 만들었다. 그 긴장감을 최대한 극복하고 평상시 실력의 80% 를 뽑아낸 원동력은 루틴이었다.

4강전은 손쉽게 2-0으로 이겼다. 상대도 잘했지만 우리 팀의 컨디션이 최상이었다. 지금까지 경기 중 최고점을 갱신하며 이겼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한 동료가 내뱉은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제껏 수십 시간 연습을 통해 루틴을 만들었고 그 루틴의 잠재력이 4강전에서 폭발한 것이라고 말이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

드디어 결승전이다. 결승전도 2-0으로 큰 위기 없이 승리할 수 있었다. 승리의 원동력은 역시 루틴의 유무였다. 상대는 긴장했는지 초반 실수를 남발했다. 그러자 당황하기 시작했고, 빨리 만회하려고 서두르기 시작했다. 당황은 순식간에 상대팀 전체에게 전염되었다. 반면 우리 팀은 두 번째 선수가 실수를 했지만 세 번째 선수까지 그 실수가 전염되지는 않았다. 우리 팀은 각자의 루틴이 있었다. 그 덕에 결승전이란 긴장감 속에서도 루틴을 지켜 예선전 총 5경기 중 최고 점수를 내며 승리했다. 반면 상대팀은 예선전 포함 전 경기 최악의 점수로 준우승에 그쳤다. 루틴은 우리 팀에게 첫 우승의 영광을 선물해 주었다.

스핀볼 대회 우승 한 후

나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나의 습관인 책 읽기와 글 쓰기 습관을 실천하고 출근한다. 벌써 몇 년째 이어오고 있는 나의 새벽 루틴이다. 몸이 아프거나 우울한 날에도 이 루틴만은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런 나의 루틴이 쌓이고 쌓여 직장 다니며 2권의 책을 출간할 수 있었고 3번째 책도 곧 출간할 예정이다.


하버드 교수인, 사라 엘리자베스 루이스는 루틴을 의식으로 표현했다.

'내 경우에는 아침에 5분 동안 일기를 쓰고 30분간 초월명상 하는 것을 하늘이 두 쪽 나도 지킨다. 간단해보이지만 이 아침 의식은 내 삶의 소중한 활력소다. 이를 하고 나면 그날 하루 몰려올 다른 실패들을 넉넉히 감당할 자신감이 생긴다'

여러분어떤 루틴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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