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짓밟는 말투
“언니라고 매번 양보해야 돼?”
이 말을 뱉어낸 언니의 눈에는 분노의 눈물이 뺨을 타고 사정없이 내려옵니다.
저는 두 딸의 아빠인데요. 올해 큰 딸은 11살(초등 4)이고 작은 딸은 7살입니다. 저도 평범한 아빠이다 보니 아이들이 제 말을 듣지 않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면 종종 화를 내곤 했었습니다.
2018년 5월 초.
시간을 조금만 과거로 돌려보겠습니다. 그날은 퇴근 후에 집에 들어가 보니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맴돌고 있었습니다. 큰 딸이 제가 중국 출장 갔다 오면서 선물해 준 가방과 인형들을 가지고 거실에서 놀고 있었는데요. 작은 딸이 언니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가더니 언니의 가방을 슬쩍 가져가려고 손을 뻗었습니다.
이를 눈치챈 언니가 동생의 손을 뿌리치며 소리 지릅니다.
"내 것인데 왜 가져가?"
언니의 화난 목소리에 놀란 동생이 울먹이기 시작합니다. 그때 엄마가 등장하며 결정적인 한마디를 날리며 동생 편을 듭니다.
"언니인 네가 양보해야지~"
이 말은 이 당시 겨우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딸의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소화해 낼 수 없는 어려운 요구사항입니다. 당연히 언니도 서운한 마음을 표출하게 됩니다.
"언니라고 매번 양보해야 돼?"
이 말을 남기고 언니도 울먹이기 시작합니다.
언니의 입장에서 보면, 매번 동생에게 양보하라고 강요하는 엄마의 말이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매번 비슷한 상황에서 몇 번이나 언니가 동생에게 양보하라고 말했는데도 바뀌는 것이 없는 큰 딸이 얄미울 뿐입니다.
이 상황에서 엄마(아빠)가 큰딸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제가 선택한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아이의 '뇌 구조'를 이해하는 것인데요. 저는 이 방법으로 아이의 행동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화를 내는 횟수도 점차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존 가트맨, 최성애 박사가 저술한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크게 3개 층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합니다.
가장 아래층(지하)은 ‘파충류의 뇌’라고도 불리는 데 호흡, 혈압 조절, 체온 조절, 심장 박동 등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능을 담당합니다.
1층은 ‘감정의 뇌’ 또는 ‘포유류의 뇌’라고 불리는데 주로 감정을 다스리고 기억을 주관하며, 호르몬을 담당하는 역할을 합니다. 기쁨, 즐거움, 화, 슬픔 등의 감정은 물론 식욕과 성욕도 ‘포유류의 뇌’에서 주로 처리합니다.
그리고 맨 위의 2층은 ‘인간의 뇌’ 또는 ‘이성의 뇌’라고 불리는 데, 생각하고 판단하며, 우선순위를 정하고, 감정을 조절하고, 충동을 조절합니다. 뇌의 총사령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특히, 이성의 뇌 중에서도 이마 뒤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전두엽'이 생각하고 판단하며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전두엽이 발달하는 데 상당히 오래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두엽은 아이가 말을 배우고 글을 익히면서 차츰 발달하다가 초등학교 4, 5학년 때쯤 어느 정도 완성되지만 그 수준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거짓말이 나쁘고, 숙제를 해야 하고, 시간 약속을 지켜야 한다 등 학교와 집 사이를 오갈 때 필요한 수준의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을 뿐, 어른처럼 복잡한 사고 판단을 하기에는 부족합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초등학교 4~5학년 때 불완전하게 완성되었던 전두엽은 청소년기에 리모델링에 들어가서 남자는 평균 30세, 여성은 평균 24~25세는 되어야 완전히 성숙해진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아직 전두엽이 미처 발달하지도 않은 아이들에게 어른처럼 생각하고 판단하기를 기대한다면, 아이는 무엇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몰라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제 큰 딸의 경우처럼, 자기 물건을 언니란 이유 때문에 동생에게 양보하라는 엄마의 말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의 뇌가 완성되는 시기가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화가 나는 순간 다음과 같이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딸은 10살이지만 저 아이의 뇌는 지금 겨우 1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뭘 더 바라겠니?
그랬더니, 10번 화를 낼 상황에서 7~8번 정도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며 아이들을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긴 하지만 말이지요.
여러분들도 아이에게 화가 나는 상황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내 아이의 뇌는 지금 1살밖에 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는 연습을 시도해 보시길 바랍니다. 분명 아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용기를 주는 대화법, 나 전달법 이란 글에서도 소개했듯이, 애초에 '화'는 2차 감정이라고 합니다. 1차 감정인 '서운함', '분함', '슬픔'이 먼저 있고, 그것을 상대방이 몰라주었을 때 '화'로 바뀌는 것입니다.
'나 전달법'이란 아껴 두고 먹으려던 케이크를 가족 중 누군가가 말도 없이 먹어 버렸을 때 "너무해! 왜 허락도 없이 남의 걸 먹어?" 하고 따지는 대신에 "아~'내'가 정말 먹고 싶었는데 '나'는 정말 아쉽네"처럼 주어가 '나'인 말투를 말합니다.
위에서 소개한 제 가족의 대화 속에도 엄마의 서운한 1차 감정이 고스란히 나타남을 알 수 있습니다.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언니가 양보하라고 여러 번 타이르고 교육했지만 달라진 것 없는 언니의 행동에 서운함과 슬픔이 진하게 묻어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 엄마가 "언니인 네가 양보해야지!"라며 2차 감정인 '화'를 전하기보다는 1차 감정인 서운함을 '나 전달법'으로 먼저 언니에게 전달하는 방법이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면, “엄마는 언니가 동생에게 양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언니가 양보하지 않아서 엄마 마음이 조금 서운하네”처럼 말이죠.
‘나 전달법'의 장점은 상대방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기 때문에 상대는 '자신의 입장이나 상황이 존중받고 있다'라고 느낀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에게 따지면서 용기를 짓밟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부드럽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부모인 우리도 아이에게 습관처럼 무의식적으로 화를 내기보다는 화내지 않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1단계로 ‘나의 소중한 아이의 뇌는 아직 1살 밖에 되지 않았구나’ 라고 인지부터 해야 합니다. 그리고 2단계로 한 발 더 나아가서, 나의 1차 감정인 ‘서운함’, ‘분함’, ‘슬픔’을 '나 전달법'으로 아이에게 먼저 표현해 본다면 화를 내는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화내는 빈도가 단기간에 눈에 띄게 확 줄어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이러한 연습을 통해 아이에게 무차별적으로 퍼부어 상처를 주고 용기를 짓밟았던 말투는 대폭 순화될 것이라 확신합니다.